‘대전 모자’ 두달 전 긴급생계비 신청했는데…

2025-07-15 13:00:02 게재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 추정 숨진 지 20여일 만에 발견 연체·채납 등 위기신호 놓쳐

두달 전 행정복지센터를 직접 찾아와 전기요금을 낼 수 없다며 긴급생계비를 신청해 지원받았던 대전의 한 모자가 숨진 지 20여일이 지나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카드빚 연체, 아파트 관리비 채납 등 다양한 위기 신호가 있었지만 정부와 지자체 복지체계는 이를 감지해내지 못했다.

15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지 3주 만에 발견된 모자는 생활고에 시달린 위기가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용카드 결제대금 연체, 아파트 관리비 체납 등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생을 마감하기까지 정부의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 9일이다. 이날 대전 서구 관저동 한 아파트에서 어머니 김 모(60)씨와 30대 아들(38)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관리사무소에서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해당 주택 출입문을 강제 개방해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시신의 부패 상태가 심각했다. CCTV 확인 결과 16일 이후 이들 모자의 활동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즈음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침입 흔적은 없었고 극단적 선택을 위한 도구가 시신과 함께 발견됐다.

문제는 이 모자의 위기신호를 정부와 지자체가 사전에 감지할 방법이 없었느냐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2014년 2월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위기가구 발굴과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안타까운 죽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제도를 계속 만들어도 여전히 복지망에 구멍이 뚫려있는 셈이다.

이번 대전 모자 사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살고 있는 아파트(56㎡, 약 17평, 시세 1억1000만원)에는 6년 전부터 9000만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자가 마지막으로 CCTV에 찍힌 6월 16일 한 카드사가 이 집에 2700여만원의 가압류를 추가했다. 이 아파트 관리비는 3월분부터 4~5개월째 밀려있었다.

긴급생계비 지원 신청 기록도 있다. 지난 5월 7일 서구 관저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신청했고, 다음날인 8일 바로 120만5000원이 김씨 통장으로 입금됐다. 한달 뒤인 6월 5일과 7월 8일에도 같은 금액이 김씨 통장에 입금됐다. 세번째 긴급생계비 지급은 이미 김씨 모자가 사망한 이후로 추정된다.

위기가정을 발굴하는 다양한 지표들 중 어느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위기가정을 사전에 감지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 건강보험공단 등 21개 기관으로부터 47개 지표를 받아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공동주택 관리비, 신용카드 등 금융연체 정보 등이 지표에 포함된다.

지자체도 위기가정 발굴을 위해 민·관이 다양한 체계를 갖춰 활동하고 있다. 특히 각 행정복지센터마다 위기가구발굴단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대전 서구 관저동 행정복지센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같은 지표와 활동 어느 것도 이들 모자의 위기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대전 서구 관계자는 “(사망한 모자가) 2017년 전입 이후 최근까지 어떤 위기 경보가 입수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김 구 대덕대 사회복지학과장은 “긴급생계지원금이 지급됐다는 것은 위기 상황이 인정됐다는 건데, 그 이후 금융상담이나 복지지원 같은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복지 사각지대가 또 한 번 확인된 만큼 신속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신일·윤여운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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