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특검수사, 사초 쓰는 자세로
특별검사 수사 개시 한 달 만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풀려난 지 124일 만에 다시 수감된 것이다. 지시를 받고 내란에 가담한 부하들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정작 내란수괴는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기막힌 모습을 오랫동안 보아온 탓인지 그의 구속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특검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여전히 밝혀내야할 의혹들이 너무나 많다.
12.3 비상계엄 당시 윤 전 대통령이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하려 했던 일, 주요 정치인과 법조인 등을 체포해 구금하려 했던 일,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해 서버를 확보하려 했던 일 등 내란 혐의와 관련해선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로 상당 부분 진상이 드러났다. 하지만 외환혐의에 대해선 제대로 실체가 밝혀진 게 없다.
외환혐의·노상원수첩 등 밝혀야 할 것 수두룩
북한 무인기 침투, 오물풍선 원점 타격 등 계엄 명분을 쌓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 했다는 의혹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자칫 한반도를 전쟁위험으로 몰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받은 북한이 도발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음모론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지만 갈수록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검수사가 시작된 뒤 “(평양 무인기 침투는) V(윤 전 대통령)의 지시라고 들었다” “북한이 무인기에 대한 적대적 발표를 한 것을 보고 V가 좋아했다”는 등 현역장교 진술도 나왔다.
충격적인 것으로 치면 ‘노상원 수첩’ 의혹도 뒤지지 않는다. 비상계엄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노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는 윤석열정부에 반대하거나 대립각을 세운 정치인과 언론인 판사 종교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 500명을 ‘수거’해 사살하거나 이송 중 사고로 위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거하려는 계획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시도했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노 전 사령관이 왜 이런 내용을 수첩에 기록했는지, 누구의 지시나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또 얼마나 실행에 옮기려 했는지 등에 대해선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민은 윤석열정부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계엄의 밤’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궁금해 한다. 한덕수 전 총리 등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계엄에 반대했다고 주장해왔지만 특검수사 과정에서 이와는 다른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특검이 확보한 대통령실 CCTV에는 한 전 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계엄 관련 문건을 검토하는 장면이 담겼다고 한다. 계엄에 적극 역할을 했다면 이에 대한 책임과 함께 국민을 속인 죄까지 물어야 한다. 그래야 공직을 바로 세울 수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방해에 가담했는지도 밝혀야 할 부분이다.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양평고속도로 변경 특혜 의혹, 명태균씨 관련 공천개입 의혹 등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들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집사 게이트’ 의혹까지 더해졌다. 김 여사의 집사 역할을 한 김 모씨가 설립한 렌터카 업체가 대기업 등으로부터 184억원을 투자받았는데 이 과정에 김 여사의 후광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김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 명품백 수수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을 무혐의 처분한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했는지도 특검이 규명해야 한다.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해병대 채 상병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도 특검의 몫이다. 이를 위해선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낸 후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이 나서 해병대수사단의 초동조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이른바 ‘VIP 격노설’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안전장비 없이 수색을 지시한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의 실체도 밝혀야 한다.
다시는 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나오지 않게 진상 밝혀 단죄해야
내란·김건희·순직해병 3대 특검에게 주어진 수사기간은 최장 120~150일이다. 제기된 의혹들을 고려하면 결코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다. 조은석 내란특검은 임명된 후 “사초를 쓰는 자세로 살펴가며 오로지 수사논리에 따라 특별검사의 직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특검수사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그와 배우자의 범죄를 낱낱이 밝혀 단죄해야 한다. 특검의 건투를 기대한다.
이선우 기획특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