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사실로 굳어지는 ‘VIP 격노설’
윤석열 ‘복심’ 강의구 전 부속실장 오늘 참고인 조사
김태효·이충면·왕윤종 “화내는 것 봤다” 잇단 진술
박정훈 대령 조사도 예정 … 수사 외압 확인할 듯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출발점인 이른바 ‘VIP 격노설’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이 잇달아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내놓고 있어서다. 특검은 핵심 관계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한 후 의혹의 정점인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순직해병 특검팀은 이날 오후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검찰에서 근무한 강 전 실장은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초대 부속실장을 지내는 등 오랜 기간 윤 전 대통령을 보좌해 ‘복심’으로 평가받는다.
특검팀은 강 전 실장을 상대로 채상병 사망 직후부터 수사 등 일련의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개입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특히 강 전 실장이 ‘VIP 격노’를 인정하는 진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VIP 격노설은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 회의에서 채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해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수사단의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크게 화를 냈다는 내용이다.
윤 전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격노했고,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질책하며 조사 결과를 바꾸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이같은 의혹을 부인해왔지만 최근 특검 수사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핵심 참모들은 ‘VIP 격노설’을 인정하는 진술을 내놓고 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1일 이뤄진 특검팀 소환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채상병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크게 화를 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회에서 “저희 앞에서 화를 내신 적은 없다”고 했던 자신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외교관 출신으로 같은 회의에 참석했던 이충면 전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도 14일 특검 조사에서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임기훈 당시 국방비서관의 보고를 받고 화를 내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는 내용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15일 특검팀 조사를 받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역시 “그날 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기훈 당시 국방비서관에게 격노한 걸 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실장은 당시 회의 참석자는 아니었지만 윤 전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의혹의 실체를 규명할 핵심 인물로 꼽힌다. 당시 통신기록에 따르면 강 전 실장은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당일 임 전 비서관과 총 6차례나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대령)에게 임 전 사단장 등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수사기록에서 빼라는 지시가 있었던 2023년 8월 1일에도 임 전 비서관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특검팀은 강 전 실장에게 당시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임 전 비서관과 통화에서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등을 캐물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조만간 당시 회의 참석했던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임 전 비서관 등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 외압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핵심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본격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특검팀은 이날 오후 박 대령이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채상병 순직사건 초동조사에 대한 수사외압을 폭로했던 인물이다. 박 대령은 VIP 격노설이 불거진 대통령실 회의 이후 김계환 당시 해병대사령관의 이첩 보류 명령에도 초동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했다가 항명 혐의로 기소돼 고초를 겪었다. 그는 올초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최근 특검의 항소 취하로 무죄가 확정돼 해병대수사단장으로 복귀했다.
특검은 박 대령을 상대로 채상병 사건 초동조사 당시 군 수뇌부로부터 받은 수사외압 내용과 사건 이첩 보류 및 회수 과정, 이후 박 대령을 겨냥한 군검찰의 표적 수사 의혹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