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파월 사퇴 압박 … 역대 사례는 어땠나
미국·튀르키예 물가급등 결과
영국은 정경분리로 시장신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는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을 해고하겠다고 거듭 위협하고 있다. 시장은 좌불안석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역대 대통령과 중앙은행장 간 갈등이 어땠고, 그 결과는 무엇인지 사례를 짚었다. WSJ는 연준 독립의 역사를 저술한 투자매니저 마크 스핀델을 인용해 “대통령이 연준을 정치적으로 압력하면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리스크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스핀델에 따르면 연준 독립의 현대적 개념은 1951년 재무부-연준의 협약으로 거슬러오른다. 이 협약으로 연준 의장이 대통령의 정치적 압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지만 기준금리 결정에서 상대적으로 큰 자율권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미국 36대 대통령인 린든 존슨은 당시 연준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 의장에게 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다. 대선공약인 사회복지 지출을 늘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존슨 대통령은 1965년 10월 마틴 의장에 “금리인상은 미국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 월가를 배불리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인하를 압박했다. 이는 당시 재무부 차관보였고 훗날 연준 의장이 되는 폴 볼커가 그의 회고록에서 술회한 내용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0년 경제학자 아서 번스를 연준 의장에 지명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번스 의장은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데 지나치게 신경쓰는 인물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72년 재선을 앞두고 기준금리를 낮추길 원했다.
인플레이션이 지속 상승하는 때였지만 닉슨은 번스 의장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했다. 그에 따라 번스 의장은 금리인상에 머뭇거렸다. 그 결과 1970년대 후반 미국 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WSJ는 “이에 교훈을 얻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연준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삼갔다”고 전했다.
영란은행의 최근 사례는 중앙은행 독립과 관련해 긍정적인 스토리다. 1694년 설립된 영란은행은 사실 오랜 기간 군주와 영국정부에 입장을 맞췄다. 영란은행 총재를 지낸 머빈 킹은 2017년 “1991년 영란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할 때 기준금리는 어느 때라도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각종 선거가 기준금리 결정의 향방과 타이밍에 영향을 미쳤다”며 술회한 바 있다.
1990년대 초 파운드화 가치는 점차 널뛰기를 시작했다. 영국정부는 과도한 통화정책 개입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1992년 파운드 가치가 달러 대비 급락하며 영국경제를 강타했다. 영국 신임 노동당정부는 투자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 1997년 영란은행이 독립적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영국증시는 급등했고 국채금리는 이후 수년 동안 안정적인 수준으로 하락했다. 스핀델은 “좌파 진보 성향의 노동당정부가 영란은행 금리결정을 정치와 분리하면서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커졌다”고 말했다.
최근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튀르키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1년 초 중앙은행장을 해고했다. 튀르키예가 경제성장 둔화, 치솟는 인플레이션이라는 2가지 악재를 겪자 튀르키예중앙은행 나지 아그발 총재가 물가안정을 우선해 기준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를 낮추면 인플레이션이 낮아진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쉬워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저금리로 경제활동이 늘어나면 물가가 올라간다는 경제학 기본개념과 상충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튀르키예 인플레이션은 2022년 3배 넘게 급등해 72%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약 60% 급락했다. 국민의 경제적 고통이 커졌고 민심은 이반했다. 같은 해 신용평가사 피치는 튀르키예국채를 정크등급인 ‘B’로 강등했다. WSJ는 “결국 에르도안정부는 2023년 기준금리를 올리며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