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증권사 발행어음 인가 신청…감독당국, 4곳 심사중단 요청
금융위 심사에 제동 걸려 … 제재·사법리스크 등 발목
내달 28일 재논의 … 롯데손보 적기시정조치 여부도
5개 증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금융당국에 신청했지만 금융감독원이 4곳에 대한 심사중단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들 증권사에 대한 심사를 중단할 경우, 올해 안에 발행어음 업무가 가능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를 늘려 기업금융을 확대하기로 한 당국의 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1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전날 열린 금융위 안건심사 소위원회(안건소위)에서 금감원은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한 삼성증권, 키움증권, 신한투자증권, 메리츠증권, 하나증권 중 키움증권을 제외한 4곳에 대한 심사 중단을 요청했다. 금감원은 금융위 실무부서와 협의를 거쳐 안건소위에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다.
금감원은 이들 증권사의 제재와 사법리스크 등을 이유로 심사 중단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지난해 상장지수펀드(ETF) 선물 매매와 관련해 1300억원 규모의 손실 사태가 발생했다. ETF 유동성공급자(LP) 운용 과정에서 담당 직원과 부서장이 공모해 장내 선물 매매를 벌였고 손실을 감추기 위해 허위 스왑거래를 전산시스템에 등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임직원 2명은 지난달말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금감원은 현재 신한투자증권에 대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두차례 전자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5월 1시간 가량 미국주식 매도·매수 주문 체결이 지연됐으며 2월에는 기업의 합병비율을 잘못 적용해 주주들에게 주식을 초과 지급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12월에도 미국 주식 주문 오류가 발생했다. 10분 이상 증권사의 전산업무가 지연되면 전자금융사고로 보고된다. 올해 1분기 증권사 전체 전산 장애 민원(45건) 중 메리츠증권이 13건으로 가장 많다. 메리츠증권은 또 임직원들이 이화전기 거래정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이득을 취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삼성증권은 자산 4조원 이상 종투사로 지정됐지만 발행어음 업무는 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2017년 인가를 받으려고 했지만 대주주 적격성 등으로 인해 발목이 잡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삼성증권의 대주주로 보고 사법 리스크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 안건 소위가 열린 17일 대법원이 이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확정하면서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해소됐다. 하나증권은 그룹의 채용비리와 관련한 사법리스크가 남아있다.
키움증권은 일단 심사중단 요청 대상에서 빠졌지만 김건희 관련 의혹에 대한 민중기 특검의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발행어음 인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특검은 이른바 ‘집사 게이트’ 관련 김익래 전 다우키움증권 회장을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금융위 안건소위에서는 금감원의 심사중단 요청에 대해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중단 여부에 대한 판단을 다음 회의로 일단 미뤘다. 여름 휴가일정 등을 고려해 안건소위는 내달 28일 다시 열릴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4월 ‘증권업 기업금융 경쟁력 제고방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안에 자기 자본 4조원, 8조원 종투사 신청을 접수받아 추가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투사는 발행어음(만기 1년 이내)을 통해 자기자본의 200%까지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조달액은 기업금융에 50% 이상, 부동산에 30% 이하로 운용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개선방안을 통해 종투사 전체 운용자산에서 발행어음 조달액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국내 모험자본에 의무적으로 공급(2028년까지 단계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발행어음 종투사를 늘려서 모험자본 공급과 기업금융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발행어음 신청 증권사들에 대한 심사가 대거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을 맞게 됐다.
한편 이날 안건소위에서는 롯데손해보험에 대한 적기시정조치 여부에 대한 심사도 진행됐다.
지난 5월 금감원이 롯데손보 경영실태평가에서 종합등급 3등급(보통), 자본적정성 잠정등급 4등급(취약)을 결정하고 금융위에 평가결과를 전달한 뒤 2달 만에 안건소위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롯데손보는 안건소위에 앞서 금융위에 하반기 유상증자, 재보험 가입·계약이전 등 내용이 담긴 자본확충 계획안을 제출했지만 구체적 유상증자 계획이 담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건소위에서도 자본확충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롯데손보에 시간을 더 줄 필요가 있는지, 적기시정조치가 내려질 경우 회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 등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건소위는 롯데손보 관련 논의도 내달 28일 다시 이어갈 예정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