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하는 극한기상…장기예측기술 한계 극복 시급
대기 - 토양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상호 연결성 파악 중요 … 인공지능 등 활용해 폭염 전망 체계 전환
다시 폭염이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져 내린 극한 호우가 막을 내린 건 다행이지만 찜통더위 역시 반갑지 않은 게 사실이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새 ‘슈퍼 폭염’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매년 이상기후 기록을 경신 중이다.
21일 기상청은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최고체감온도가 33℃ 내외로 올라 무덥겠고 일부 지역에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이 있겠다”며 “특히 경기남부 등지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체감온도가 35℃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고 예보했다.
20일 사실상 중부지방 장마가 종료되면서 본격적인 여름 날씨로 접어들었다.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남서~서풍 계열의 바람을 따라 수증기가 유입되며 고온다습한 공기가 정체할 전망이다. 폭염 강도와 범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티베트 고기압의 확장 여부가 큰 관심사다. 한반도 서쪽에 있는 티베트 고기압이 점차 동쪽으로 확장되면서 일본 동쪽 해상에 중심을 둔 해양성 열대기단과 함께 작용하면 폭염이 더 강해지고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티베트 고기압이 거대한 뚜껑 역할을 하면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고기압 아래로 공기가 내려오면서 압축돼 온도가 올라가고 태양열이 지면을 달구고 시원한 바람의 유입을 막는 구조가 형성된다.
문제는 이런 폭염이 일상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올여름 위험기상이 단발성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적인 현상으로 고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더욱이 한국은 지구 온난화 속도가 전세계 평균 보다 빠른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18일 이명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최근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기상재해들이 빈발하고 있다”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며칠 전에 예측하기보다는 1~3개월 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장기 예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 폭염 예측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육지와 대기 상호작용 중 어떤 요소들이 특히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폭염은 하늘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사막의 눈과 토양의 수분, 상공의 기압 배치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낸 지구시스템 산물이다. 이런 상호 연결성을 이해해야만 정확한 장기 예측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기후와 대기과학(npj Climate and Atmospheric Science)’에 실린 논문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을 이용한 한국의 폭염 예측을 위한 원격상관 동인 규명(Unveiling teleconnection drivers for heatwave prediction in South Korea using explainable artificial intelligence)’에 따르면, 봄철 고비사막의 적설 감소와 겨울철 톈산산맥의 적설 증가가 대한민국 여름 폭염과 가장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봄철(3~5월) 고비사막에 눈이 적게 쌓이고, 겨울철(12~2월) 톈산산맥에 눈이 많이 쌓일 때 한국에서 폭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고비사막 적설이 감소하면 한국 상공에 고기압이 강하게 형성되고 대기가 안정화되면서 고온 건조한 여름 조건이 만들어진다. 또한 서태평양 아열대고기압이 북상하면서 폭염을 가중시킨다. 톈산산맥의 적설 증가 역시 유라시아 대륙 상공의 대기 파동 유형을 변화시켜 동아시아 아열대 제트기류를 북쪽으로 밀어올리며, 결과적으로 한국 상공에 고기압성 순환을 강화시킨다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1960년부터 2022년까지 63년간의 기후 자료들을 분석해 한국 폭염에 영향을 미치는 16개의 ‘원격상관 동인’을 발견했다. 원격상관이란 멀리 떨어진 지역의 기후변화가 다른 지역 날씨에 미치는 영향을 뜻한다. 이 16개 요소들을 설명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XAI)에게 학습시켜 한국 폭염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
극한 폭염 예측에서 정밀도 83.3%와 재현율 71.4%를 기록해 1973년 1994년 2013년 2016년 2018년 등 역사적인 폭염 해를 예측했다. 또한 단순히 통계적 상관관계만 찾아내지 않았다. 연구팀은 설명가능한 인공지능 기술인 샤플리 부가설명(SHAP) 분석을 통해 예측 결과의 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폭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대기 상태뿐만 아니라 토양 내 수분과도 연관이 있다. 실제로 2018년 북유럽을 강타한 폭염의 경우 토양 수분이 평년보다 23% 감소했고, 이로 인해 지표면에서 증발하는 잠열이 줄어들면서 대기를 직접 가열하는 현열이 증가해 최대 4℃까지 기온이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제학술지 ‘날씨와 기후 극한현상(Weather and Climate Extremes)’의 논문 ‘2018년 북유럽 폭염예측에서 토양 수분-기온 상호작용의 역할(The role of soil moisture-temperature coupling for the 2018 Northern European heatwave in a subseasonal forecast)’에 따르면, 토양 수분이 특정 임계점 이하로 떨어지면 ‘과민감 영역’에 들어가고 이 상태에서는 토양이 조금만 더 건조해져도 기온이 급격히 상승했다.
연구진은 영국 기상청의 계절 예보 시스템(GloSea5)을 활용해 토양 수분과 온도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핵심은 예측 모델이 이런 과민감 영역을 정확히 포착하느냐 여부였다. 모델이 토양의 과건조 상태를 제대로 예측한 경우 5일 예보에서 폭염 적중률이 60%에 달했다. 하지만 놓친 경우에는 30%에 그쳤다.
물론 이 연구 결과들을 폭염 예측에 활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슈퍼컴퓨터 기반의 기후 모델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데 현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이나 여러 데이터 분석을 통해 현 장기 예측 시스템의 기술적인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며 “기상청 등에서 지금도 투자를 하고 있지만 좀 더 속도가 붙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설명가능한 인공지능 = 인공지능이 내린 결정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종전에는 입력과 출력만 알 수 있는 ‘블랙박스’ 형태로,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기 어려웠다. 설명가능한 인공지능은 어떤 요소가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