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총선 참패…금융시장 흔드나

2025-07-21 13:00:07 게재

고물가대책 쟁점, 보조금 vs 소비세 인하 … 재정악화 우려에 국채금리·환율 급등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했다.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과반의석을 내주면서 국정운영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금융시장 변동성도 커질 전망이다. 이번 선거 최대 쟁점이었던 고물가 대책으로 여권은 보조금 지급을, 야권은 소비세 인하 및 폐지를 내걸었다. 야권의 승리로 세수감소와 재정악화로 국채발행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서민생활고에 자민당 참패

참의원 선거 최대 쟁점은 물가대책이었다.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전국민 1인당 2만엔(약 19만원) 보조금과 사회적 약자 계층에는 추가 2만엔을 지급하는 공약을 내놨다. 야당은 소비세 인하 또는 폐지를 내세웠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식료품 등에 한해 현행 8%인 소비세를 0%로 하는 정책을 내걸었다.

국민민주당과 공산당은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일률적으로 10%인 소비세를 5%로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참정당은 단계적인 소비세 폐지를 주장했다. 고물가 대책과 관련 여권은 재정확대, 야당은 세제개편을 내세워 격돌한 셈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19일 선거유세에서 “의료와 연금 등의 재원으로 활용해 온 소비세를 낮추거나 폐지하자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식탁의 위기에 무대책인 자민당인가, 식료품 소비세 제로의 입헌민주당인가를 묻는 싸움”이라고 했다.

최대 쟁점이 물가대책으로 집중된 데는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총무성이 18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동기 대비 3.3% 상승했다. 5월(3.7%)에 비해 소폭 하락했지만 미국(2.7%)이나 한국(2.2%) 등을 크게 웃돈다.

특히 쌀값(100.2%)과 커피(40.2%), 닭고기(7.8%) 등 신선식품을 뺀 식료품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2%나 상승해 서민생활을 압박했다. 장기간 이어지는 엔저 등으로 수입물가가 상승하며 소비자물가에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3~14일 조사한 결과, 이번 투표에서 가장 중시하는 정책에 대해 ‘고물가대책’이라는 답변이 42%로 가장 높았다. 이어서 ●사회보장(22%) ●교육 및 보육(14%) ●외교 및 방위(9%) ●외국인정책(7%) 등이 뒤를 이었다.

대미 관세협상 등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여야 대립도 눈에 띈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 9일 선거유세중 “(미국이) 깔보는 데 참을 수 없다. (관세협상은) 국익을 건 싸움”이라며 “동맹이라도 정정당당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일방적 태도에 외교적으로 강경한 발언을 통해 표심을 모으려는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선거에서는 또 일본내 외국인에 대한 대책을 놓고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선거에서 약진한 참정당은 이른바 ‘일본인 퍼스트’라는 구호를 내세워 외국인 유입 규제와 의료보험 이용 및 생활보호 지급 제한 등을 주장해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 참정당이 기존 자민당 보수지지층을 잠식하자 정부는 지난 15일 외국인 정책을 담당하는 사무국 조직을 설치하는 등 외국인 정책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의 패배 원인이 되기도 했던 자민당의 정치자금 부정 문제도 이번 선거에서 여당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사설에서 선거결과에 대해 “SNS 등으로 무장한 신흥 정치세력 대두는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냈다”며 “전후 정치체제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국채발행 급증 예상, 금융시장 불안정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 금융시장 불안정성은 커질 전망이다. 모든 야당이 소비세 인하와 폐지를 주장하면서 세수 감소에 따른 재정악화와 국채발행 급증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선거에서 각당이 내놓은 정책과 공약에 수반되는 재원의 규모와 관련 △자민당 약 3.2조엔 △입헌민주당 약 5조엔 △국민민주당 약 12조엔 △참정당 약 24조엔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주부터 야당의 승리가 점쳐지면서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바바 나오히코 바클레이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8일 보고서에서 “재정적극파인 야당이 약진할 경우 장기금리가 급등하고 엔저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SMBC닛쿄증권도 이날 보고서에서 “재정 확장은 그 자체가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키고 엔저를 불러온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에서는 최근 변동성이 커졌다. 지난주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49엔대까지 상승해 3주 연속 엔화가치가 하락했다. 유로엔 환율도 173엔으로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국채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지난 15일 채권시장에서 10년물 장기국채는 연 1.595%까지 상승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같은 날 신규발행 30년물은 3.200%로 높은 수준을 보였고, 20년물도 2.650%로 1999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모리노부 시게키 도쿄재단 시니어정책오피서는 “지금 내놓은 정책공약을 실현한다면 국채발행 급증으로 이어져 큰 쇼크가 될 것”이라며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재원대책 없이 대규모 감세정책을 펼치려다 통화가치와 채권가격 주가폭락 등 ‘3저’를 불러온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올해 일본정부 예산(115.5조엔)의 24.8%를 국채발행으로 재원을 조달한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추가적으로 29조엔의 국채발행이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엔저가 가속화되면 물가는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여기에 일본 국채 신용도 하락으로 민간의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올라 부담이 커진다. 다만 지난해 기준 일본 가계의 주담대 잔액은 약 380조엔(약 3600조원)으로 가계의 예·적금(1000조엔)에 비해 적어 금리상승에 따라 금융자산을 가진 가계는 이자소득을 늘려 소비활성화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호시노 테루 시티그룹증권 시장부문장은 “이번 선거는 정치의 중심이 크게 흔들리면서 시장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자민 연립정권 가능할까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향후 정국 가늠자는 이시바 총리 조기 퇴진 가능성이다. 이시바 총리는 20일 저녁 선거 패배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원내 제1당의 책임이 있다"면서 총리직 사퇴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 고문으로 당내 유일하게 계파를 해산하지 않은 아소 다로 전 총리는 20일 “총리직 유지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사실상 퇴진을 요구했다.

이시바 총리가 퇴진할 경우 당 총재선거가 조기에 열린다. 차기 당 총재 후보로는 지난해 이시바 총리와 결선투표에서 격돌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등의 출마가 거론된다.

다만 자민당 총재가 차기 총리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연립여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민당은 기존 공명당에다 일부 야당세력을 끌어들여 정권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국민적 지지를 상실한 자민당과 연립에 나서는 야당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자민당을 뺀 나머지 야당세력의 연립정권 가능성도 나온다. 자민-공명 연립연당을 뺀 야당의 전체 의석은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과반을 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다만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22석 당선에 그치면서 의석수 확대에 실패해 야권 전체를 주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은 향후 정국과 관련 “앞으로 정치의 표류는 피할 수 없다”며 “자민·공명 연립정권 운영은 더욱 힘들어져 새로운 ‘국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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