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법 시행 1년…초단기 시세조종 적발 강화
10~30분 사이에 범행, 거래소 이상거래 적출시스템 고도화
자본시장 ‘원스트라이크 아웃’ 처벌, 코인시장에도 반영되나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를 중심으로 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코인 시세조종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과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초단기 시세조종 적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제재도 강화할 예정이다.
가상자산법은 지난해 7월 19일 시행됐다. 법시행 3일 만에 시세조종 사건이 발생했고 당국에 적발됐다.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 상장돼 있는 ACE(퓨저니스트)는 지난해 7월 22일 거래량이 약 245만개로 하루 만에 약 15배 급증했다. 7월 1일부터 범행 개시 전날인 21일까지 ACE의 일평균 거래량은 약 16만개였다. 범행을 저지른 A씨의 거래가 전체 거래량의 약 89%를 차지했다.
A씨 등은 자동주문프로그램을 통해 코인 시세 변동에 정확히 맞춰 직전 체결가 대비 3~11% 또는 5~25% 낮은 가격(체결가 대비 일정비율 낮은 5단계)으로 매수주문을 제출했다가 체결가격이 변동하면 이를 즉시 취소하고, 다시 같은 방식으로 매수주문을 제출함으로써 실제 매매계약은 체결하지 않은 채 마치 대량의 매수세가 유입되는 것으로 오인하도록 했다. 이 같은 허수 매수주문을 하루에 수십만 건씩 제출했다. 허수 매수주문은 대부분 취소됐고 시세조종 범행 기간 거래소의 해당 코인 전체 매수주문량의 약 80~90%를 차지했다. 이들은 시세조종을 통해 약 71억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거래소로부터 이상거래 심리결과를 통보받아 조사를 벌였고 2개월 후인 10월말 긴급조치절차(Fast Track)를 통해 검찰에 통보, 수사가 진행된 사건이다.
올해 1월에는 금융당국이 정식 조사절차를 거쳐 검찰에 고발한 첫 사건이 나왔다. 혐의자들은 특정 코인을 먼저 매수해 놓고 단시간 내에 시장가 매수주문 등을 제출해 가격과 거래량을 상승시켰다. 시세조종을 벌인 시간은 대부분 10분 이내였으며, 횡보하던 코인 가격은 급등 후 급락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들은 약 1개월 간 수억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당국이 올해 4월 검찰에 고발한 시세조종 혐의자들도 20~30분 내외에 시세조종 주문을 집중·반복(초당 1~2회)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소위 ‘경주마’로 불리는 시세조종 수법이다. 1일 가격변동률 등이 초기화되는 시점(거래소별로 상이)에 다수의 코인 가격을 빠르게 상승시키는 모습이 경주마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매수세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외관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코인 시세를 조종했다.
또 다른 유형은 이른바 ‘가두리 펌핑’ 수법으로, 거래소의 거래유의종목 지정 등으로 코인의 입출금이 중단돼 차익거래가 불가능해지면 유통량이 적은 중소형 종목의 경우 인위적인 시세조종(가두리 펌핑)이 용이해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혐의자들은 거래유의종목을 사전에 매수한 뒤 수 시간 동안 시세조종 주문을 제출, 손쉽게 가격·거래량을 급등시킨 뒤 매수세를 유입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했다.
21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세조종에 걸리는 시간이 요즘은 3분을 넘어가지 않는다”며 “가상자산시장 조사심의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2건 이상씩 시세조종 사건이 회부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이후 검찰로 보낸 시세조종혐의 사건은 10여건 이상이다.
코인거래소의 이상거래 적출·심리를 거쳐 금융당국에 이상거래가 통보되면 금융위와 금감원이 조사를 벌인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의심거래를 자체 인지해서 조사를 벌이기도 하기 때문에 투트랙 감시 체계가 구축돼 있는 것이다.
올해는 거래소의 이상거래 적출시스템을 고도화했다. 초단기 시세조종을 적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또 거래소별로 역량 차이가 크고 거래량도 다르기 때문에 달리 설정돼 있는 임계치도 동일하게 설정했다. 특정 종목의 거래량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면 이상거래로 적출되게 시스템을 설계했지만 그동안 거래소마다 증가량 기준을 자율적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거래소와 당국의 조사역량 강화도 진행하고 있다”며 “이상거래 적출 체계 개선과 시장 경보 체계 개선 등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가상자산검사국 직원들을 모두 IT 전공자들로 구성했으며 코딩을 활용한 매매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가상자산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제재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실현하기 위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근절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지급정지, 과징금, 금융투자상품 거래와 임원선임 제한명령 등 행정제재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규제는 사실상 주식시장 불공정거래와 동일하다. 입법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을 그대로 끌고 왔기 때문이다. 위반시 제재 역시 같다. 1년 이상 유기 징역 또는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과 회피한 손실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부당이득금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부과할 수 있다. 자본시장법과 마찬가지로 부당이득의 2배에 상당하는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처벌이 강화되는 만큼 코인 시장 규제 역시 비슷한 추세로 진행될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자산) 제도를 자본시장 쪽하고 가급적 맞춰가면서 가상자산의 특성을 고민해서 여러 가지 장치들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