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직원 1539명 ‘조직개편 문제점, 귀담아 들어달라’ 호소
금융소비자보호처 분리 반대 … “오히려 소비자보호 역행” 직원 전체 반발
‘새 정부에 의사 전달 통로 없다’ 판단, 일부 팀장들이 자발적으로 의견 모아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분리해 별도 기관으로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 개편안 추진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감원 실무 직원 전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조직이 신설될 경우 승진 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통상 조직 내부의 찬성 의견이 강하거나 찬반 여론이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직원 대부분이 반대하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2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 73개부서 직원 1539명은 ‘금감원 실무직원 호소문’을 작성해 정부 조직개편 논의를 진행 중인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에 우편으로 전달했다. 금감원 직원은 지난해말 기준 2172명인데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무보직 직원과 임원, 국·실장을 제외하면 1800명 가량 된다. 이중 부재자를 제외한 대다수가 호소문에 참여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국정위에서 검토 중인 금소처 분리는 진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방안이 아니며, 오히려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방안이라 생각해 부득불 동 호소문을 드린다”며 “부디 국정위 여러 위원께서 저희 실무직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시어 금소처 분리 방안을 재고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새 정부 들어 금감원장이 임명되지 않으면서 금감원 직원들은 국정위에 이 같은 내부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사실상 없다고 판단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금소처 일부 팀장들이 문제 의식을 갖고 초안을 작성했고 당초 금소처 직원들의 동의만 구하려고 했다가 금감원 전체 직원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진행했다. 금감원 각 부서 총괄팀에 호소문을 전달하고 총괄팀이 해당 부서 전체의 찬반 의견을 취합해 전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서는 부서장인 국·실장들의 의사도 취합했다. 일부 국·실장들 역시 호소문에 동참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벼랑 끝에 몰린 직원들의 절박한 심정이 호소문에 반영됐다”며 “어떤 이유에서 금소처 분리를 반대하는지 국정위에서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 업무 처리의 실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금소처만 분리시키면 소비자보호가 더 잘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라며 “조직을 신설해 뭔가 보여주기식 소비자보호 강화를 하겠다는 것은 새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주의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무직원들은 호소문에서 “금융회사 쪽으로 기울어진 금융시장을 금융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조정하기 위해 금감원은 금융상품의 제조, 판매, 계약내용 준수 여부 등 금융회사의 행위들에 대해 철저히 감독하고 검사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모두 금융소비자 보호”라며 “정책적으로 보호해야하는 대상은 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금융소비자이며, 금융소비자보호업무가 단순히 민원·분쟁을 처리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의 금소처만 분리해 금소원을 설립하는 것은 ‘전체 금융소비자에 대한 보호’와 ‘민원을 제기한 금융소비자에 대한 보호’를 쪼개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의 전문성 약화 문제도 제기했다. 현재 금감원 직원들은 다양한 부서에 근무하기 때문에 금소처 직원들이 감독·검사·조사 부서에서 습득한 업무전문성을 분쟁조정과 민원처리 등 금융소비자보호에 활용하고 있다. 또 금소처에서 얻은 금융소비자보호 업무경험을 다른 현업 부서에서 활용할 수 있다.
호소문을 통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이 설립될 경우 업무협업, 인적교류 등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결국 민원·분쟁 등 금융소비자보호기능의 질적 저하 및 금융소비자 권익침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소원이 금융소비자보호법과 대부업법,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등과 관련된 사건만 맡게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따른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 초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금감원 직원들은 “현재 거론되는 방안처럼 금소원이 3가지 법률만 담당하게 된다면, 금융관련법령을 적용해 처리해야 하는 민원·분쟁의 경우, 그 소관기관이 모호하게 돼 책임소재 시비 등으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혼란만 야기시킬 뿐”이라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소처 분리 반대와 관련해 조직 이기주의라는 시선에 대해서는 “조직이 신설되면 소위 승진 자리가 늘어날 수 있어 직원 입장에서는 더 좋은 기회로 여겨질 수도 있어 오히려 반겨야 할 사항”이라며 “금소원 신설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진정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방안이 아님을 알기에 이렇게 호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의 한 국장급 인사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고 드러내놓고 나서는 것에 소극적인 금감원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의사 표시를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그만큼 내부 반발 여론이 강하다는 의미”라며 “이후 추가적인 조치나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려하는 대로 금소원이 분리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