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산기업, 트럼프 위협에 반사이익
미 “방어 안해준다”에 유럽, 자체무기 생산 잰걸음
유럽 국가들이 자체 방산업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정부가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32개 회원국에 ‘방위비 기여금을 늘리지 않으면 유럽 방어를 포기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으름장을 놓으면서다.
물론 NATO 회원국들은 일단 트럼프정부 압박을 받아들였다.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방위비를 늘리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사이버안보와 인프라 등 국방인접 프로젝트에 추가로 1.5%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정부의 잇따른 위협에 자체 개발·생산에 나서는 유럽 국가들이 늘고 있다. 언젠가는 미국과 견줄 수 있는 방산부문을 갖추겠다는 것.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6일 “유럽 에어버스가 미국 보잉을 넘어서는 건 한때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에어버스는 보잉을 추월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전했다.
벨기에 범유럽 싱크탱크 ‘브뤼헐’의 선임연구원 군트람 울프는 “유럽이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구매하면, 미국은 그 대가로 유럽을 방어해준다는 게 과거의 암묵적 계약이었다”며 “하지만 현재 유럽대륙 전반에서 유럽산 무기 조달비중을 어느 정도까지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중요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산 무기 해외 판매액은 3187억달러(약 440조원)에 달했다. 유럽은 미국산 무기 최대 구매지역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산 무기 구매를 크게 늘렸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유럽의 무기수입 중 미국 비중은 2015~2019년 5년 동안 52%였지만 2020~2024년엔 64%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유럽 NATO 회원국들은 국방비에 4540억달러를 썼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올해 들어 미국산 무기 수입을 줄이거나 대안을 찾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 88대를 130억달러에 구매한다는 협의를 재고하고 있다. 캐나다정부는 미국 이외의 국가가 생산한 전투기를 구매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는 지난달 국방지출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국방비의 3/4을 미국무기를 사는 데 쓴다. 더이상 그래선 안된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미국산 M1A2에이브럼스 탱크를 구매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로템의 K2탱크를 60억달러에 수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덴마크는 미국 RTX(옛 레이시온)의 패트리엇 시스템 대신 프랑스·이탈리아가 개발한 미사일방어시스템을 선택하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 토드 해리슨은 “유럽국가들이 점차 유럽 방산기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우선하고 있다”며 “국방비를 대폭 늘리는 이유를 대중들에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유럽 방산부문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유럽국가들은 특히 덴마크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 2016년 F35전투기 27대를 30억달러에 구매했던 덴마크는 그동안 미국산 무기의 충실한 구매국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정부가 그린란드 합병을 위협하면서 덴마크 내 미국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덴마크 방산애널리스트 한스 페터 미카엘센은 “올해 말 미국 패트리엇 시스템 대신 유럽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유럽산 무기체계를 구매할 시기가 됐다는 정치적 신호”라고 말했다.
물론 유럽 방산부문이 미국 수준으로 올라서는 일은 하룻밤새 이뤄질 수 없다. SIPRI에 따르면 유럽이 국방비 대거 증액을 약속했지만 지난해 NATO 회원국들의 국방지출 비중은 2.2%(총액 1조5000억달러)에 그쳤다. 일부 국가들은 3.5%까지 늘리려면 국방비를 3배 증액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국 군사정보제공업체 ‘제인스’의 국방예산전문가 앤드루 맥도널드는 “유럽이 미국 수준으로 올라서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유럽의 방산 미래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올해 유럽방산기업 주가는 미국에 비해 크게 올랐다. 포탄 주요 생산기업인 독일 라인메탈 주가는 177%,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는 75% 상승했다. 반면 미국 RTX 주가는 25%, 록히드마틴은 -4%였다.
브뤼헐의 울프 연구원은 “트럼프정부는 미래 미국 방산부문과 싸우게 될 경쟁업체들을 키우는 의도치않은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며 “경제사를 보면 긴급한 필요성이 있을 때 관련산업 개발은 급격히 빨라진다. 우리는 그 시점에 있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