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일본 완성차·부품 제조업 ‘진퇴양난’

2025-07-22 13:00:32 게재

자국내 생산, 현지 이전 모두 비용과 리스크 높아

일본차, 미국 점유율 소폭 상승불구 전망 불투명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일본 제조업체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자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추가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생산기지를 현지로 옮기더라도 인건비와 근로자 숙련도 및 기타 정책적 위험성 등으로 적지않은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21일 ‘트럼프 관세 서바이벌’을 주제로 자국의 자동차와 철강, 에너지, 반도체 등의 제조업이 퇴로없는 갈림길에 몰렸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미국 수출의 40%에 가까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완성차와 관련 부품업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관세 대책, 묘수가 안보인다 = 야마구치현 호후시에 있는 마츠다자동차 호후공장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대형차를 생산한다. 이 공장은 여러 차종을 같은 라인에서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혼류(混流) 생산’을 강점으로 한다. 일본 판매용 오른쪽 운전석 차량과 미국 수출용 왼쪽 운전석 차량을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조립한다.

마츠다는 미국 수출용 차량의 생산을 대부분 이 공장 등 자국내에서 만들었는데 관세 영향으로 앞길이 불투명하다.

미국 컨설팅업체 엘릭스파트너스 추산에 따르면, 일본에서 수출하는 자동차 1대당 관세 비용은 2026년도 6200달러(약 840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데 드는 비용(1700달러)이나 미국내 현지 생산과 판매에 들어가는 비용(900달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 4월부터 부과되고 있는 자동차 관세율 25%가 유지될 경우 그만큼 추가적인 비용이 불가피해 업체로서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관세부과에 따른 추가 부담을 일부 수출자동차 업체가 부담하면서 지난 4월 이후 대미 자동차 수출단가가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재무성 무역통계에 의하면 이전까지 자동차 1대당 평균 수출단가는 400만엔(약 3800만원)대 이상을 유지해 오다가 5월 이후 350만엔대로 급락했다.

개별 완성차 업체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4~5월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800억엔(약 1조7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도요타 관계자는 “4~6월은 완성차나 부품의 현지 재고가 아직 남아 있었다”며 “7월 이후는 재고가 없어져 타격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혼다도 올해 연간 실적이 최대 6500억엔(약 6조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마츠다는 지난 3월말 “생존 모드로 들어간다”라는 협조문을 대표이사 명의로 개별 협력업체에 전달했다. 비용 절감을 위한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미국 현지생산도 높은 장애물 = 관세에 따른 추가 비용이 급증하면 완성차 업체는 현지 생산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미 제너럴 모터스(GM)는 지난 6월 2년간 40억달러를 투입해 멕시코 생산라인을 미국으로 이전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업체는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분석이다. 한 완성차 회사 간부는 닛케이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추가 관세를 고려해도 미국내 생산은 일본보다 비용이 더 비싸다”고 고충을 전했다. 특히 미국은 임금 상승폭이 커 연간 1000만엔(약 9400만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추산이다.

하지만 생산성은 일본의 절반 수준이라는 게 완성차 업체의 인식이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가 반이민 정책으로 값싼 외국인 노동력의 미국내 유입이 감소하면 인건비 등 생산비용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완성차 업체가 주요 차종의 생산을 미국으로 본격 이전하거나 현지에 새롭게 공장을 건설하는 결정은 머뭇거리고 있다. 비용만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차종별로 최적화된 부품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데 생산기지를 옮기면 개별 부품업체와 다시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미 미국 안에 50개 이상의 공장을 가지고 있는 GM처럼 이전이 쉬운 업체와 일본 회사는 여건이 다르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내 생산 요구를 외면하고 미국시장을 포기하기도 어려운 선택이다.

이에 따라 일본 업체들의 남은 유력한 수단은 가격 전가다. 실제 자동차 업체들은 신차 모델 출하에 맞춰 가격인상에 나섰다.

스바루는 6월 차종에 따라 최대 2055달러(약 280만원) 인상했다. 미쓰비시도 일부 차종에 대해 평균 2.1% 인상했다. 도요타도 7월부터 평균 270달러(약 37만원) 인상했다. 마츠다도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각 사는 또 판매 장려금을 삭감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가격전가에 따른 수요 감소 조짐도 나온다. 스바루는 6월 판매 대수가 16%감소했고, 마츠다도 6% 줄었다. 다만 상반기 전체 일본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소폭 증가했다.

미국 자동차조사회사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일본 완성차 업체 6개의 시장점유율은 올해 상반기 37.4%로 지난해(36.7%)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도요타가 15.3%로 전년(14.6%)보다 증가했고, 혼다도 같은 기간 8.8%에서 9.1%로 늘었다.

지지통신은 “트럼프 관세의 역풍을 받으면서도 하이브리드 차량의 수요가 커져 견조한 판매를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매체는 “관세부과가 장기화되면 본격적인 가격인상을 피할 수 없다는 업계 관계자 지적처럼 앞날은 불투명하다”고 했다.

◆부품업체는 '이중고' = 부품업체도 관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요타 한 2차 협력업체는 지난 6월 미국내 부품 재고가 소진됐다. 수출 전량이 추가 관세 대상이어서 1차 협력업체 등과 가격인상을 위한 교섭도 시작했지만 아직 비용부담은 전적으로 이 업체가 부담하고 있다.

이 회사 한 간부는 “납품하는 업체와 시기 등에 따라 관세율이 바뀐다”며 “어느 세율인가를 증명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작업도 부담이고, 가격 협상하는 동안 자금의 융통도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구동장치와 트랜스미션 등을 만드는 시즈오카현에 있는 부품사 유니밴스의 다카오 노리히코 대표는 “향후 완성차 업체로부터 원가 절감 요구를 받을 것”이라며 “매출에 서서히 나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매출의 40% 가량을 미국 수출이 차지한다. 최대 고객은 포드자동차로 알려졌다.

미국에 본사를 둔 한 부품업체는 지난 4월 그동안 거래가 없었던 한국 완성차 업체로부터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받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업체는 일본 업체에 비해 미국내 생산이 적어 대응을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6월부터는 일본 업체로부터도 현지 생산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생산라인 증가는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위험도 크기 때문에 신중한 모습이다.

일본 경제에서 자동차산업이 가지는 비중을 고려하면 관세 영향은 주주를 비롯해 이해관계자에 주는 타격이 크다.

마츠다 주가는 관세부과 전부터 20% 가량 하락했다. 지난 6월 마츠다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는 “마츠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서도 “이대로는 안심하고 주식을 장기 보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경제도 영향을 받는다. 마츠다 공장이 있는 히로시마현의 올해 6월 일본은행 경기업황지수는 43포인트나 급락했다. 3개월 이후 전망지수도 코로나1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현지 경제계 관계자는 “일본제철 생산 거점이 폐쇄돼 히로시마 경제에서 마츠다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며 “마츠다의 생산이 미국으로 옮겨가면 지역경제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반도체 및 전자부품 회사 등의 고전도 예상된다. 미국이 TSMC와 삼성 등 반도체 업체의 자국내 생산을 유도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소재와 부품, 장치산업이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공급망 전체를 미국으로 옮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과 여러 부수적 조치가 필요하다. 일본 한 반도체 장치업체 대표는 “재료나 장치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산 칩의 국제적 가격 경쟁력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의 점유율이 높은 전자부품 업계에서는 직접 미국에 부품을 납품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 다만 관세로 완제품 수요가 줄면 타격은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부품에서 일본 업체의 점유율이 높기 때문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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