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기후재난 시대에 대비하는 자세

2025-07-23 13:00:10 게재

기후재난 시대다. 대형 산불과 극한 폭염·폭우 등 경험하지 못한 자연재난이 해마다 반복된다. 이번 장마철에는 200년 만에 한번 있을 법한 폭우로 전국이 초토화됐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비가 그친 전남과 강원 제주 광주 등에는 폭염경보 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극한호우’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도 최근 일이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150여명에 달했다.

몇년 간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지만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새정부 또한 출범 초기부터 장마철 대책을 강하게 주문했지만 인명피해를 막지는 못했다.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닷새간 집중된 최대 7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전국에 쏟아져 21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이제 예측불가능한 기후재난이 일상이 됐다.

‘극한호우’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기후재난이 일상화된 세상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재난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연 300일 이상 비가 오지 않는 미국 텍사스에서는 지난 4일 홍수로 29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폭염과 우박이 동시에 발생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급격한 기후변화가 한두해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기후변화로 인해 재난의 강도는 갈수록 세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올해 장마철에 발생한 극한호우도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비가 내린’ 기후재난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주민 1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산청군은 16일부터 내린 누적 강수량이 800㎜에 육박했다. 하루 2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경기 가평군에서도 20일 하루 동안 6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인명피해가 발생한 충남 서산·당진과 경기 오산·포천, 광주 북구도 시간당 100㎜ 안팎의 비가 내린 지역이다. 실제 기상청 분석자료를 보면 이번 집중호우 기간 200년 빈도 집중호우가 내린 지역이 10곳이나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도 일어났다. 2022년 8월 서울 강남 침수를 불러온 비는 시간당 141㎜로 500년 빈도였다. 2023년 7월 산사태가 일어난 경북 북부 지역에는 1년 강우량의 1/4이 이틀 새 쏟아졌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 반지하 침수 당시 서울에서는 115년 내 가장 많은 강우량이 측정됐다. 태풍 힌남노 당시 포항 냉천의 제방은 80년 빈도로 설계됐지만 집중호우를 이기지 못했다.

문제는 이 정도 폭우가 쏟아지면 10~30년 빈도로 설계된 기존 재난대응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기존 도시계획과 하천 설계는 시간당 30㎜ 내외 강우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80~100㎜ 이상 폭우를 감당할 수 없다.

지난해 정부가 새 기준을 만들었지만 적용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려 당장 대책이 되지 못한다. 지난해 3월부터 200년으로 상향된 소하천 설계빈도도 개정안 시행 이후 추진되는 소하천 정비사업 등에 적용된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정확한 지역별 예상 강우량 예측에 실패하는 등 정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냈다.

기후변화에 맞춰 재난대책 다시 짜야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맞춰 재난대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을 전면 재설계하고, 독일처럼 포장도로와 건물 등에 부과하는 ‘우수유출 부담금’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200년 최대 강우량에 맞춰 모든 도시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장기적 대책만으로는 매년 발생하는 인명피해를 막을 수는 없다. 당장 기후재난으로 인해 매년 인명피해가 발생하는데 도시인프라를 개선할 때까지 손을 놓게 되면 기후재난을 대비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규정하는 꼴이 된다.

한편으로는 기존 재난대응체계를 기후재난에 맞춰 신속하게 정비하되, 예·경보시스템이나 주민대피시스템 같은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시급한 대책은 인명피해를 막는데 초점을 두고 구체적 목표 등을 적시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로드맵 없이 달성 기한도 없고 진행과정도 공개하지 않는 재난대책은 헛구호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기후재난은 국민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언제까지나 재난을 기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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