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비상장시장, 개인투자자에 점차 개방

2025-07-23 13:00:20 게재

2034년 62조달러 예상 … NYT “다양한 상품 출시”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과거와 달리 더 오래 비상장을 유지하려고 하면서 상장기업들 수는 지난 30년 동안 절반으로 줄었다. 10억달러 넘는 가치를 인정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은 전세계 1500개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월가가 비상장시장을 점차 일반에 공개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를 인용해 “비상장시장에서 운용되는 자산이 2014년 이후 3배 넘게 늘었다”며 “비상장시장 규모는 향후 10년 상장시장보다 최대 2배 빠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034년 비상장시장 규모는 62조달러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전통적으로 비상장주식 투자는 부유하고 투자 경험 많은 사람들만의 영역이었다. 연소득 20만달러 또는 순자산 100만달러 이상의 ‘공인투자자(accredited investors)’에 한정됐다. 이렇게 제한한 이유는 개인투자자들을 고위험 투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엔젤레스 자산운용 CEO 조너선 포스터는 “비상장시장은 정보가 부족하고 환금성이 낮기 때문에 자칫 개인투자자들은 투자금을 전부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새 비상장기업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월가 펀드매니저와 증권사,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은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비상장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상품을 속속 개발 중이다.

미국 주식·암호화폐 거래플랫폼 ‘로빈후드’의 암호화폐부문 부사장 요한 커브랫은 “비상장주식을 우리 플랫폼에 끌어들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미증권거래소(SEC) 위원장 폴 앳킨스 역시 비상장시장 접근성 확대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앳킨스 위원장은 올해 5월 “금융혁신이란 자본이 흐르도록 정부가 길을 비켜주는 것일 수 있다”며 개인투자자도 비상장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이달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401(k) 퇴직연금 자금으로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최종 가다듬고 있다. 사모펀드가 DC퇴직연금 시장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한 법적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미국 퇴직연금 규모는 2022년 9조6000억달러였지만 지난해 12조4000억달러로 커졌다.

비상장주식 유통시장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비상장주식 거래플랫폼은 포지글로벌(Forge Global)과 데스티니(Destiny), 오그멘트(Augment), 하이브(Hiive), 에퀴티젠(EquityZen) 등으로 주식을 현금화하려는 비상장기업 직원과 해당 기업에 투자하려는 외부 투자자를 중개한다. 포지의 경우 스페이스X와 오픈AI, 앤트로픽, 피그마, 스트라이프 등 주요 스타트업 200여곳에 대한 투자기회를 제공한다. 향후 200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물론 이런 플랫폼에 참여하려면 적격성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비상장주식 거래문턱은 크게 낮아졌다. 포지는 올해 3월 최소 투자금액을 5000달러로 낮췄다.

이 기업 수석전략책임자 하우 응은 “우리는 더 많은 투자자들에게 기회를 넓혀야 한다고 믿는다”며 “올해 1분기 거래량은 전분기 대비 132% 증가해 6억9240만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로빈후드는 최근 유럽 시장에서 ‘토큰화된 주식(tokenized equities)’을 출시한다고 발혔다. 이는 블록체인 기반 파생상품으로, 상장·비상장 자산을 암호화폐처럼 거래할 수 있다. 로빈후드는 출시를 기념해 스페이스X와 오픈AI 토큰을 무료 배포하면서 “실제 거래는 아직 불가능하지만 진짜 주식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로빈후드는 향후 수천개 비상장기업 자산을 토큰화할 계획이다. 커브랫 부사장은 “이 기술의 진정한 강점은 어떤 금융상품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비상장시장 확대는 결국 투자 민주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상장지수펀드(ETF)와 뮤추얼펀드, 퇴직연금 등 기존 금융상품들도 비상장시장 노출을 늘리는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XOVR’, ‘$ARKVX’ 등의 ETF는 인기 있는 비상장 기술기업들에 투자한 사모펀드들에 간접투자하는 상품이다.

포지는 최근 후기단계 미국 스타트업 60개를 추종하는 ‘인터벌펀드’를 SEC에 신청했다. 이 펀드에는 차임(Chime)과 서클(Circle), 크라켄(Kraken), 스페이스X 등 기업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블랙록은 사모펀드·사모대출을 포함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새로 출시했다. 또 300억달러 규모의 인수합병을 통해 비상장시장 확대에 나섰다.

1조8000억달러 규모의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임파워(Empower)’도 조만간 사모자산 투자에 뛰어들 계획이다. JP모간체이스는 최근 비상장기업에 대한 리서치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월가가 도박본능을 자극한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엔젤레스 투자운용의 포스터 CEO는 “비상장시장의 문턱이 낮아질수록 월가는 점점 더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들의 도박본능을 자극하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SEC도 이러한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 앳킨스 위원장이 비상장시장 혁신을 지지하고 있지만 SEC는 최근 ‘기존 제한규정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공지문을 게시했다. SEC는 특히 토큰화된 사모상품을 우려하고 있다.

SEC 위원 헤스터 피어스는 “블록체인기술이 아무리 강력해도 기초자산의 본질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은 아니다. 토큰화된 증권도 결국 증권”이라고 말했다.

NYT는 “무엇보다 비상장기업은 공개기업보다 재무정보의 투명성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일반투자자는 정보격차를 스스로 메워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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