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자사 펀드에 자산 매각 역대 최고
컨티뉴에이션 펀드 활용 … 외부 매각이나 IPO 어려워진 탓
올해 상반기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고객 자산을 자신들이 운용하는 다른 펀드에 매각한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매각이나 기업공개(IPO)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른바 ‘컨티뉴에이션 펀드(continuation fund)’를 활용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투자은행 ‘제프리스’ 보고서를 인용해 “사모펀드들이 올해 상반기 총 41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통해 회수했다”며 “이는 전체 매각 거래의 19%로 사상최고치다.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고 전했다.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기존 펀드에서 보유하던 자산을 자사가 운용하는 새로운 펀드에 매각하는 구조다. FT는 “최근 수년간 IPO가 급감하고 인수합병 시장이 침체하면서 투자자에게 자금을 돌려줄 방법이 마땅치 않자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이런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사모펀드들은 3조달러 이상 미실현 자산을 보유중이다. 제프리스의 사모펀드 부문 공동대표인 토드 밀러는 “우리는 지금 3~4년째 낮은 환급률을 목격하고 있다”며 “자산매각 환경은 어렵고 IPO시장은 거의 멈춘 상태”라고 설명했다.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기존 투자자에게 2가지 선택지를 제공한다. 새 펀드로 투자 자산을 ‘롤오버(포지션 이월)’해 계속 보유하거나 아니면 매각하고 현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이 구조를 통해 통상 10년인 기존 펀드의 만기를 넘겨 포트폴리오 기업을 계속 보유할 수 있다. 또 매각 시 발생하는 성과보수는 물론 새로운 펀드로부터 관리보수도 꾸준히 받을 수 있다.
올해 상반기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와 뉴 마운틴 캐피털, 인플렉션 등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수십억달러 규모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활용해 주요 투자자산을 매각했다. 비스타는 IT기업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그룹’의 기존 지분을 매각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56억달러(약 7조6700억원)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조성했다. 인플렉션은 산업재 기업 ‘아스펜 펌프스’, 영국 제약사 로즈먼트 파마수티컬스 등 4개 기업 지분을 23억파운드(약 4조2800억원)에 매각했다.
제프리스의 또 다른 공동대표 스콧 베켈만은 “이제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모든 사모펀드 운용사에게 공식적인 엑시트(회수) 수단이 됐다”며 “운용사들이 장기적인 복리효과를 위해 우량자산을 계속 보유하는 데 적합한 구조”라고 말했다.
제프리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컨더리 시장(기존 펀드의 투자지분을 매매하는 시장) 규모는 1000억달러를 넘었다. 전년 대비 약 50%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기존 투자자(유한책임출자자)가 보유지분을 매각했다.
인기전략으로 부상한 컨티뉴에이션 펀드는 투자자금을 ‘재활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이런 거래 참여를 꺼리고 있다.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모펀드 투자자의 약 2/3는 여전히 기업 매각이나 IPO 등 전통적인 방식의 엑시트를 선호한다”며 “컨티뉴에이션 펀드를 선호한다고 답한 비중은 투자자의 1/6에 그쳤다”고 밝혔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