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적자 기술스타트업에 IPO 재개방
R&D 중심 AI·로봇 기업들, 다시 상장 기회 얻어
지난 2년 동안 중국 주식시장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의 상장에 냉정했다. 하지만 중국정부가 기술혁신과 자본시장 성숙을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4일 중국 차이신글로벌에 따르면,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 우칭 주석은 지난달 상하이 루자쭈이 포럼에서 나스닥 스타일의 과학기술 중심 시장인 ‘커촹반’에 새로운 ‘성장등급(Growth Tier)’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중단된 ‘제5호 상장기준’을 부활시켜 적자상태 기업들도 다시 상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하이증권거래소는 이달 13일 세부 시행지침을 발표했다. 적자 기업들의 시장공개(IPO) 절차를 공식 복원했고 적용범위도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신흥산업 분야로 확대했다.
2019년 도입된 커촹반은 중국 자본시장에서 드물게 과학기술 혁신을 위해 설계된 시장이다. 수익보다는 연구개발(R&D) 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구조로, 바이오·반도체·우주항공 같은 고위험 분야 기업을 위한 5가지 상장기준을 제시한다. 그중 제5호 기준은 특히 적자기업 전용으로 설계됐다.
2020년 초 바이오테크 기업 ‘쑤저우 젤겐 바이오파마슈티컬스’가 이 기준을 통해 첫번째 ‘U’ 표시(적자상장기업)를 달고 상장했다. 이후 50여개 기업이 뒤를 이었다. 이 중 20곳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젤겐 등 나머지 기업들은 여전히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 기류가 바뀌었다. 증감회는 2023년 8월 ‘IPO 심사속도를 늦출 것’을 지시했다.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취지였다. 같은 해 9월 ‘쑤저우 센텍 커뮤니케이션스’를 마지막으로 적자기업 상장은 사실상 동결됐다. 심사가 강화되면서 지난해 IPO 신청 열기도 급격히 식었다.
올해 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증감회는 지난 3월 회의에서 5호 기준에 대한 ‘신중한 복원’이라는 문구를 공식 언급했다. 지난달 ‘우한 허위안 바이오텍’이 최근 3년간 누적 5억위안의 손실에도 IPO 심사를 통과하며 분위기 변화를 증명했다.
새로 도입된 ‘성장등급’은 적자상태 기업들이 5호 기준에 따라 상장할 수 있도록 별도로 분리된 구조다. 5호 기준은 수익요건이 없다. 미래가치와 기술력, R&D 역량만으로도 상장이 가능한 유일한 경로다. 하지만 시장가치 40억위안(약 7600억원) 이상이라는 최소기준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기준을 적용받는 기업은 종목코드 옆에 ‘U’ 표시가 붙고 흑자 전환 시 일반등급으로 이동하게 된다. 현재 커촹반 상장사 589개 중 475개는 수익요건을 갖춘 1호 기준을 따랐다.
이번 재개방 조치가 아무 기업이나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운 시스템은 사실상 ‘초청제’에 가깝다. 중국 한 투자은행가는 “상장이 가능한지 거래소가 먼저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신청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달 초 반도체칩 기업 ‘무어 스레즈(Moore Threads)’와 ‘메타엑스(MetaX)’가 각각 33억·50억위안의 누적손실에도 신청서를 접수했다. 차이신은 “신뢰도 높은 기관투자자와의 딜, 철저한 사전점검, 그리고 비공식 승인이라는 ‘3박자’가 충족돼야 상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또 이달 발표된 ‘사전심사’ 제도는 기업들이 기술정보 노출을 최소화한 채 비공개 방식으로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경쟁기업이나 시장의 추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최근 ‘U’ 표시로 상장한 54개 기업 중 22곳은 IPO 가격 아래로 주가가 하락했다. 11곳은 20% 이상 급락했다. 인공지능 영상인식 기술 보유업체 ‘딥글린트(DeepGlint)’ 등 일부 기업은 절반 이상 가치가 증발했다.
차이신은 “적자기업에 IPO 문을 다시 연다는 것은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라 중국이 기술혁신과 자본시장 성숙을 위해 감수하는 ‘위험에 대한 베팅’”이라며 “이는 기술기업의 미래를 넘어 중국 자본시장 전체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실험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