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력 시대가 온다
역대급 폭염에 지각 태풍…온난화 신호 본격 드러날 해
세계기상기구, 엘니뇨 라니냐 중립상태 … “빈도 줄어도 억눌리다 터진 태풍 돌발성 강해, 대응 체제 전환 필요”
역대급 폭염과 돌발성이 더 강해지는 태풍. 해가 갈수록 심화하는 지구온난화 신호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바야흐로 시간을 무시한 채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진보의 시대를 넘어 ‘회복력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회복력은 현상의 재정립이나 상태가 아닌 세상에서 일어나는 작용의 방식이다. 하지만 회복력의 시대를 앞두고 우리나라가 마주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40.6℃’. 27일 오후 4시 46분께 경기 안성시 양성면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기록된 수치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로 전국이 비상이다.
28일 기상청에 따르면 △제주 서귀포는 15일 이후 13일째 △서울은 19일 이후 9일째 △인천 청주 강릉은 20일 이후 8일째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열대야는 밤사이(18:01~다음날 09:00) 기온이 25℃ 이상 유지되는 현상이다. 더 큰 문제는 당분간 극한 폭염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상공을 덮은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연일 기온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뜨거워진 동풍이 폭염에 가세할 전망이다.
기상청은 “당분간 기온은 평년(최저 21~24℃, 최고 28~33℃)보다 높겠다”며 “전국 최고체감온도 역시 35℃ 내외로 올라 매우 무덥겠고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이 많겠다”고 28일 예보했다. 이어 “28일 소나기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일시적으로 기온이 내려가겠으나 비가 그친 뒤에는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낮 동안 다시 기온이 올라 무덥겠다”고 내다봤다. 평년은 지난 30년간 기후의 평균적 상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 20일~7월 25일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신고된 환자 수는 218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3배 이상 많다. 역대급 폭염으로 연일 종전과 다른 기록들이 경신되는 상황에서 태풍 역시 평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중이다.
올해 1호 태풍인 ‘우딥’은 6월 11일 베트남 다낭 동쪽 580㎞ 해상에서 발생했다. 늦어도 5월 말에는 첫 태풍이 발생하는데 이번처럼 지연된 건 이례적이다. 우딥은 1951년 이후 역대 5번째로 늦게 등장한 태풍으로 기록됐다. 태풍 발생이 늦어지는 해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강한 세력이 지속되면서 폭염이 극심해질 수 있다. 온난화시대에 태풍은 복합재해를 일으키는 무서운 요인이 될 수 있지만 한반도 폭염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 태풍이 접근하면서 가져오는 많은 비와 바람이 기온을 떨어뜨리고 축적된 열기를 식혀주기 때문이다.
25일 강남영 경북대학교 교수는 “엘니뇨와 라니냐 등 우리가 흔히 내부 변동이라고 부르는 출렁거림 현상의 폭이 커서 지구온난화라는 신호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크기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며 “이러한 내부 진동의 영향으로 인해 단기간의 태풍 현상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올해는 엘니뇨나 혹은 라니냐 신호가 약해 중립상태에 가깝다”며 “만약 종전과 다른 태풍 특성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내부 진동 때문이 아닌 온난화 특성 때문으로 드러나기 좋은 해”라고 덧붙였다.
◆세력 커진 북태평양고기압, 태풍에 영향 = 세계기상기구(WMO)가 6월 5일 발표한 ‘엘니뇨 라니냐 전망’에 따르면 7~9월 중립일 확률이 65%, 라니냐가 발생할 확률이 35%다. 중립 상태에서는 엘니뇨나 라니냐처럼 뚜렷한 기후 유형이 없어서 태풍 발생 빈도나 강도 경로 등을 더욱 예측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
기상청의 ‘2023 한반도 영향태풍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1991~2020년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은 총 25.1개다. 이 중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은 3.4개다. 월별로 보면 △8월 5.6개 △9월 5.1개 등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는 약 1개 정도가 영향을 줬다.
한반도에 태풍이 유입 여부를 결정할 때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큰 역할을 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를 덮고 있을 때는 맑고 더운 날씨가 계속되어 폭염이 발생한다. 반면 태풍은 이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며, 태풍이 접근하면 고기압이 약해지거나 밀려나면서 폭염이 해소된다.
25일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열대저압부 혹은 열대 요란이 생길 때 우리나라 주변에 통로(기압계)가 열려 있나 혹은 닫혀 있나가 중요하다“며 “북태평양고기압이 굉장히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태풍이 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8월에는 태풍이 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는 않다”며 “9~10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근본적으로 약해지면서 태풍의 통로가 열릴 때 우리나라로 향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급격하게 발달하는 등 대응 어려워져 = 문제는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태풍 빈도와 강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온난화 상태에서는 고기압이 강화되면서 태풍이 잘 생기지 않게 막다가도 일단 한번 열리면 기회를 찾은 태풍들이 보다 더 강하게 발달하고 ‘빵’ 터지듯이 갑자기 급격하게 발달하는 특성이 있다”며 “지구온난화로 태풍 빈도가 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지만 억눌리다가 터진 태풍은 종전과 다른 경로를 보이는 등 돌발성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응 측면에서 지구온난화 상태에서 생겨나는 태풍들은 훨씬 더 난해할 수 있다”며 “돌발 상황이 연속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어떻게 대응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폭염 피해를 언급할 때 1994년과 2018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다. 기상청의 ‘2018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은 장기간 지속된 폭염으로 일최고기온 최고치를 경신(41℃, 홍천) 하는 등 극한의 기온 변화를 보였다.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 열대 서태평양의 대류활동 강화 등이 더위 원인으로 분석됐다. 2018년 7월 초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일적으로 강하게 발달하면서 장마가 빨리 끝나고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졌다.
2018년 10월 5~6일에는 제 25호 태풍 콩레이가 상륙하면서 많은 비를 뿌려서 10월 전국 강수량이 164.2㎜에 달했다. 콩레이가 덮치면서 경상도 동해안 일대에선 2명의 인명피해와 549억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앞서 2018년 8월 26일부터 9월 1일에도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침수피해가 발생해 피해액이 414억원에 달했다. 1994년의 경우 8월에만 태풍 3개(브렌던 더그 엘리)가 잇따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엘니뇨와 라니냐 = 엘니뇨는 열대 동태평양 감시구역 해수면 온도가 3개월 이동평균으로 평년보다 0.5℃ 이상 높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유지되면 발생한 것으로 본다. 라니냐는 엘니뇨와 반대로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상태다. 엘니뇨와 라니냐 자체는 이상기후가 아닌 지구 열순환에 의한 자연적 현상이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가속화됨에 따라 발생 주기와 강수·기온 유형이 달라지고 있다.
■태풍 = 태풍은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북서태평양에서는 태풍(Typhoon) △북중미에서는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반구에서는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부른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열대저기압 중에서 중심 부근의 최대풍속 △33㎧ 이상을 태풍(TY) △25~32㎧을 강한 열대폭풍(STS) △17~24㎧을 열대폭풍(TS) △17㎧ 미만을 열대저압부(TD)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최대풍속이 17㎧ 이상인 열대저기압 모두를 태풍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