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까지 몰린 한미 통상협상
뉴욕타임즈 “한국, 협상수단 제한적”
농축산물 추가 개방·투자금 상향 관건
한국이 미국과의 상호관세 통상협상에서 벼랑 끝에 몰렸다.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무역협정을 타결했기 때문이다.
27일(현지시간) 타결한 미-EU간 무역합의는 22일 발표된 미국-일본간 무역협상 타결 내용과 유사하다.
EU와 일본은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했던 관세율(EU 30%, 일본 25%)을 크게 낮췄다.
하지만 그만큼 합의를 위한 답안도 나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EU와 일본에 버금가는 시장개방과 투자를 약속하는 것이 그것이다.
◆“호혜성은 조건 아닌 결과로 측정” = 뉴욕타임즈는 “미국과 일본의 협상타결로 한국은 큰 압박을 받게 됐다”며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경쟁자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 처하지 않는 협정을 체결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은 2007년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대부분의 관세를 0% 인하하기로 했기 때문에 협상수단이 제한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한미FTA 개정안에 서명했지만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는 매년 증가해 지난해 660억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은 미국-한국이 생산적인 무역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갈등이 지속되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또 동아시아담당 전 미국 무역관리자였던 마이클 비먼의 말을 인용해 “호혜성은 조건이 아닌 성과와 결과(outcomes and results)로 측정된다”고 전했다.
투자금액 상향도 난관이다. 한국은 일본이 관세 인하 대가로 약 5500억달러(약 760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면서 미국의 기대치가 한층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기존에 준비했던 ‘1000억달러+α’ 규모의 투자계획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계획과 별도로 정책금융기관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국부펀드이자 잠재적 자본원인 한국투자공사(KIC)는 2060억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앞서 3월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2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 협상단, 할 수 있는 선은 다했을 것” = 산업통상자원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협상은 다 했을 것”이라며 “이제 남은 건 농축산물 개방과 투자금액 상향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내다봤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미국에서 31일(현지시간) 진행할 1대1 통상협의 시점까지다. 조 현 외교부장관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힘을 보탤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이 협상을 완료했거나 협상 중인 상대국들과 비교할 때 한국은 미국이 꼭 필요로 하는 제조업 부흥, 에너지·첨단기술 개발 협력 등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라며 “이런 부분을 설명하며 협상의 레버지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 일환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조선산업 협력방안과 액화천연가스(LNG) 추가 구매 및 알래스카 천연가스 프로젝트 참여는 이미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가 3월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정부의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사용제한 정책, 해외 콘텐츠 공급자에 대한 네트워크 사용료(망사용료) 부과 법안, 거대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입법 동향 등 디지털교역 장벽도 상당부분 완화를 시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안세령 주미 한국대사관 경제공사는 최근 패널 토론에서 “오랫동안 신뢰받아 온 동맹국인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조업 활성화 비전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강력한 산업력과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고려할 때 이러한 파트너십은 양국 무역의 균형을 맞추고 확대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이러한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되 트럼프의 면을 세월 줄 추가방안 여부가 협상타결의 절대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