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 협상 타결…‘3500억 달러+α’ 내주고 농산물 사수

2025-07-31 13:00:28 게재

이 대통령 “국익 최우선 협상, 한미동맹 더욱 확고”

“직접투자 비율 높지 않아 … 반도체 등 최혜국 대우”

“한미 FTA 사라진 시대 살게 돼 … 경제 관계 급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하루 앞두고 한미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내주고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동시에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막아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질의응답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31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한미관세 협상 결과를 설명했다. 이날 새벽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우리 협상단이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최종 담판을 지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다.

김 실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존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신을 통해 예고했던 25% 관세를 15%로 낮추고 자동차 품목 관세 역시 15%로 하향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추후 부과되는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같은 조치를 받아내기 위해 우리 정부가 미국에 약속한 것은 3500억 달러+ α(알파)다. 원화로 약 490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것이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에 특화된 펀드이고,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들에 대한 투자 펀드다. 앞서 일본에선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하면서 5500억 달러의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한 바 있다.

김 실장은 이같은 액수가 책정된 것과 관련해 “한국·일본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 규모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 달러, 685억 달러”라면서 “우리의 투자펀드 규모를 경제 규모만으로 일본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 펀드 1500억 달러를 제외하면 우리의 펀드 규모는 2000억 달러로 일본의 36%”라고 강조했다.

조선업 협력 펀드의 경우엔 한국 기업이 미국 진출에 도움이 되는 효과가 크다는 게 한국 정부의 생각이다. 김 실장은 “한미 조선업 협력펀드는 선박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라며 “우리 기업의 수요에 기반해 구체적인 투자가 될 예정이다. 우리 조선 기업과 소프트웨어 분야 강점을 보유한 미국 기업이 힘을 합친다면 자율운행 선박 등 미래 선박 분야에서 시너지 창출이 기대된다”고 했다.

펀드 운영과 관련해선 여러 안전장치를 달았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김 실장은 “펀드 운영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프로젝트에서 나온 산출물은 미국 정부가 인수를 책임지기로 했으며 합리적이고 상업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프로젝트에 투자될 것”이라며 “이런 표현은 일본 펀드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직접 투자 비중도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 등에서 대출 또는 보증 형태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협상 과정에서 ‘비망록’에 다 적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구매액은 1000억 달러 수준으로 정해졌다. 이에 대해 김 실장은 “통상적으로 우리 경제 규모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수입액”이라면서 “일부 중동산에서 미국산으로 바꿀 수는 있겠지만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상에서 최대 성과는 미국 측의 압박이 거셌던 쌀과 소고기 추가 개방 등에서 양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실장은 “미국의 강한 요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소고기 수입에 월령 제한을 두는 나라가 3개국밖에 없다든지 등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을 미국이 주장했다)”며 “그러나 식량 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우리 측 협상단은 미국의 소고기 수입액이 세계 1위라는 점, 농산물의 경우에도 99.7% 이상을 이미 다 개방하고 있다는 점 등을 협상 과정에서 강조했다고 한다.

김 실장이 아쉬운 부분으로 든 것은 자동차 관세가 15%로 정해진 점이다. 김 실장은 “12.5%를 최선을 다해 주장했지만 (미국은) 유럽이든 일본이든 다 15%였다”면서 “12.5%를 고수하면 여러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주 내에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선 한미 투자와 관련한 추가 방안이 논의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이 대통령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오직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임했다”면서 “이번 합의는 제조업 재건이라는 미국의 이해와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확대라는 우리의 의지가 맞닿은 결과”라고 밝혔다. 아울러 “한미간 산업 협력이 더욱 강화되고 한미 동맹도 더욱 확고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일단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향후 추가적인 협상 부분에 대한 긴장도 늦출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우호국을 구분하지 않은 채 오로지 (무역)적자국이냐, 흑자국이냐 이 틀로 강압적 관세 정책을 펴왔다. 그간의 우호 관계, 동맹 간의 전통은 사실상 뒷자리가 됐다”면서 “한미 FTA가 사라진 ‘포스트 한미 FTA’를 살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지난 20년간 한미 관계를 구축해 왔던 경제 관계가 급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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