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방위병 논란에 비친 엘리트주의

2025-08-01 13:00:06 게재

“군은 국민의 군대여야 합니다.” 7월 25일 국방장관으로 취임한 안규백 장관의 첫 일성이다. 그는 국방부가 더 이상 계엄의 도구가 아닌 헌법과 국민을 지키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장병복지 향상, 첨단전력 확보, 한미동맹 강화, 방위산업 육성 등 청사진도 제시했다.

그런데 이런 정책 비전보다 더 크게 회자된 것은 그의 복무 이력이었다. 그는 64년 만에 임명된 문민장관이지만 단기사병(방위병)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롱과 의심을 견뎌야 했다. 7월 15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안 후보자의 복무방식과 병역기록을 문제 삼았다. 후보자가 병무행정상 오류라고 해명했지만 “방위 출신 장관이 국가안보를 맡아도 되느냐”는 식의 질문을 이어갔다.

특히 여성 최초 소장(2성 장군) 출신인 국민의힘 강선영 의원은 “장관 후보자가 방위병 출신”이라며 “국가안보에 위기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국민들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단기사병’이라는 복무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다. 1969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된 단기사병 제도는 병력 과잉 시기 국가정책이었다. 출퇴근 형태로 복무했지만 군인 신분이었고 국가안보 유지에 실제 기여한 자원이었다. 그런데도 복무방식이 장관 자격을 의심하는 기준이 됐다. 그 이면에는 출신과 계급에 따라 사람을 서열화하는 엘리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고졸 학력을 이유로 수십 년간 정치적 조롱을 받아야 했다. 실력이나 성과보다 학력과 배경을 먼저 따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출신은 정치 인생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런 차별적이고 우생학적 사고는 지금도 정치 언론 교육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유시민 작가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부인인 설난영씨를 두고 “남편 덕에 신분 상승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발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 노동자 비엘리트에 대한 깊은 편견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지난 정부 국방장관들의 전력을 보면 진짜 문제는 출신이 아니라 태도였음을 금세 알 수 있다. 김용현 전 장관은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12·3 계엄의 핵심 주동자다. 이종섭 전 장관은 채상병 사망 사건 은폐 의혹으로 특검 조사를 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육사를 나온 3성 장군 출신이다. 엘리트 군 출신의 민낯이다.

결국 단기사병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출신을 곧 능력으로 오해하는 엘리트주의에 찌든 사고방식이다. 이런 사고야말로 국방도 정치도 민주주의도 가로막는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자격 없는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

정재철 국제팀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