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후 대응 정책 후퇴…중국, 글로벌 기후 리더십 강화
트럼프 '온실가스 위해성 판단’ 철회…재생에너지 보조금 축소
중, 동남아·아프리카 친환경에너지 프로젝트 확대 등 입지 확대
글로벌 기업들 실질적 ESG 투자 오히려 증가 … 그린허싱 확산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가능 금융 관련 정책이 대폭 후퇴했다. 파리협정 재탈퇴와 UN 기후 피해 기금 이사회 탈퇴에 이어 급기야 온실가스 배출의 위해성 판단까지 철회했다. 반면 중국은 전면적 탄소 감축 계획을 발표하는 등 기후 위험 대응과 친환경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 기조를 한층 강화했다. 특히 녹색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과 동남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 확대 등을 통해 글로벌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의 실질적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투자는 미국 내에서도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규제 불확실성·소송 위험 증가 우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9일 온실가스 배출이 인류 건강에 해롭다는 ‘위해성 판단 (Endangerment Finding)’을 철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철회안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보고서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발표했다. 올해 9월 15일까지 여론 수렴 절차가 끝나면 트럼프 정부는 위해성 평가를 철회할 수 있다. 2009년 발표된 위해성 평가 폐기안이 최종 확정되면 미국 기후변화 규제 대부분이 무효가 될 전망이다.
2009년 오바마 정부 시절 도입된 이 판단은 지난 16년간 미국 온실가스 규제의 핵심 법적 근거였으며, 폐기 시 자동차 배출가스부터 발전소까지 모든 주요 배출원 규제가 전면 철폐될 전망이다. 환경보호청은 연간 540억달러의 규제 비용 절감을 강조하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규제 불확실성과 소송 위험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취임 직후 파리협정 재탈퇴를 공식화했다. 또 UN 기후 피해 기금 이사회에서도 탈퇴 또한 전기차 정책 재조정과 차량 배기가스 배출 규제 완화,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 유예를 연이어 발표했고,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보조금도 축소한 바 있다. 이번에 발표한 온실가스 위해성 판단 철회는 다른 국가와 금융기관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다만 미국 내에서도 이번 위해성 평가 폐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다. CNN은 1일 에너지부가 발표한 151쪽짜리 보고서가"5명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에 의해 작성됐다"고 보도했다. 과학계는 에너지부 보고서가 ‘가짜 뉴스’로 가득하다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미국 기후학자 마이클 맨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과학·지속가능성·미디어연구센터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보고서는 마치 화석연료 산업이 지원하는 상위 10개 기후변화 회의론 누리집으로 챗봇을 훈련한 결과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앤드류 데슬러 텍사스 기상이변센터 소장도 “이들의 목표는 증거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이번 보고서는 과학의 기본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보”라고 평가했다.
◆중국, 전면적인 탄소감축 계획 발표 =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후퇴 속에서 중국은 최근 에너지법 시행과 전면적인 탄소 감축 계획을 발표하며 기후변화 대응 및 친환경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 기조를 한층 강화하면서 글로벌 기후 리더십이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1월 재생에너지 확대, 수소·에너지 저장 등 기술 지원을 포함한 에너지법 시행으로 포괄적 법적 기반을 마련했고 4월에는 모든 온실가스와 전 산업을 포괄하는 전면적 탄소감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 녹색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과 동남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 확대 등을 통해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고 있으며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등에서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선도하는 중이다.
지난달 24일에는 유럽연합(EU)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EU-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발표한 공동 성명에 따르면, EU와 중국은 에너지 전환과 메탄 배출 저감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빈곤 퇴치라는 목표를 중심으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EU와 중국은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를 앞두고 2035년까지 파리협정의 장기 목표에 맞춘 기후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그린허싱 현상, 투자자들에게 독특한 기회 제공 = 한편 EU는 지난달 말일 중소기업 자발적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VSME)을 채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26년부터 담보 평가에 ‘기후 요인’을 반영하는 혁신적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기후 전환 리스크에 따라 담보 자산 가치를 차등 평가하는 것으로, 통화정책에 기후변화 대응을 본격 통합하는 조치다.
이렇게 글로벌 ESG 규제 환경이 미국의 규제 완화와 유럽의 규제 강화라는 극단적 분화를 보이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실질적으로 ESG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성 조사기관인 에코바디스(EcoVadis)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매출 10억달러 이상 미국 대기업의 87%가 ESG 투자를 유지하거나 증가시켰으며, 이 중 31%는 투자는 늘리면서도 홍보는 줄이는 전략적 침묵을 선택했다. 단지 8%만이 공개적 소통을 중단했을 뿐 투자는 지속하고 있어, 실제로 ESG를 포기한 기업은 7%에 불과했다.
65%의 경영진이 공급망 지속가능성을 경쟁 우위로 인식하고 있으며, 52%의 재무 담당자가 이를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그린허싱 현상은 투자자들에게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린허싱이란 기업이 ESG활동을 하면서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S&P 100 기업 중 지속가능성 보고서 제목에 ‘ESG’를 사용한 비율이 2023년 40%에서 2024년 25%, 2025년에는 단 6%로 급감한 바 있다. 미국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Conference Board) 조사에서는 80%의 기업이 ESG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그린허싱 현상은 투자자들에게 독특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유럽의 엄격한 ESG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들은 글로벌 확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며 “미국 연방 규제 후퇴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실질적 지속가능성 수요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기업의 ESG 커뮤니케이션 감소를 실질적 성과 후퇴로 오해하지 말라”며 “객관적 성과 분석을 통해 ‘말하지 않지만 실행하는’ 진정한 ESG 리더를 발굴하는 능력이 향후 초과 수익률 창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 내에서도 연방 차원의 기후정책 후퇴와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 차원의 대응이 충돌·상충되는 정책 기조는 미국 내 기업과 투자자들의 전략 수립에도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처럼 각국의 대응은 정책적 상황, 산업 구조 등에 따라 상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일관성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 연구위원은 "글로벌 ESG 정책의 일관성이 약화되어 혼란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ESG 공시 의무화를 앞두고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