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지방행정망인데 중앙으로 통합?
행안부 ‘17개 시·도별 구축’ 계획 뒤집어
지자체 “분권 역행, 지역 IT 생태계 고사”
행정안전부가 ‘차세대 지방행정정보시스템’을 애초 구상한 17개 광역 단위가 아닌 중앙집중형으로 구축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효율성을 내세워 시스템 통합을 추진한다지만, 시스템 구축 예산의 절반을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과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타통과 이후 사업방향 틀어 = 12일 행안부에 따르면 차세대 지방행정정보시스템 구축은 기존 17개 시·도 공무원이 사용하는 시·도행정시스템과 228개 기초지자체 공무원이 사용하는 새올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7000억원대로 공공부문 역대 최대 규모다.
행안부는 최근 이 사업에 대한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재신청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사업비 6807억원 규모로 예타를 통과한 사업인데, 행안부가 사업 내용을 크게 바꾸면서 예산 규모가 7000억원대로 늘어나자 재심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문제는 예타 재심의 이유가 된 ‘사업 내용’이다. 애초 행안부는 차세대 지방행정정보시스템을 17개 광역 단위로 구축하기로 했다. 지난해 예타도 이 내용으로 통과했다. 하지만 올해 초 이행계획과 세부예산 산정을 위한 정보시스템마스터플랜(ISMP)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업 방향을 통합구축 쪽으로 틀었다.
행안부는 지난 5월 통합구축 방안과 지자체별 자체 구축 방안을 두고 17개 시·도를 통해 시·군·구 의견을 취합했다. 그 결과 10개 시·도가 통합에 찬성했고, 나머지는 반대했다는 것이 행안부 설명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통합구축과 개별구축 여부는 아직 명확하게 확정된 것도 아니다”라며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자체들 얘기는 다르다. 5월 말까지 기재부에 예산을 신청해야 한다는 이유로 의견 수렴을 형식적으로 진행했고, 시·도를 통해 의견을 취합하면서 시·군·구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실제 통합에 찬성한 인천시의 경우 소속 구·군 의견은 정확히 반반이었지만 인천시 전체 의견은 찬성으로 분류됐다. 반대로 분류된 충북도의 경우 시·군에서 압도적으로 통합구축을 반대해 찬성할 수 없었다. 사업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지자체 여론 수렴이 부족했던 셈이다.
◆“지역 IT 생태계 구축 도와야” = 중앙집중형 통합구축과 시·도별 개별구축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중앙집중형은 전국 데이터를 한곳에서 관리해 정책 변경이나 시스템 업데이트를 한번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비스 표준화도 쉬워 운영 효율성이 높다. 중복되는 기능이나 소프트웨어를 통합할 수 있고 유지보수 비용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만만찮다. 만약 중앙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전국이 동시에 마비될 수 있다. 지난 2023년 새올 시스템에 장애가 생겨 전국 모든 시·군·구 행정전산망이 통째로 마비되는 사고가 있었다.
장차 온나라시스템 기록관시스템 공간정보시스템 등 지자체 주요 업무가 모두 중앙정부에 예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지자체 고유사무인 고향사랑기부제가 좋은 사례다. 효율성만을 내세워 고향사랑e음이라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한 탓에 시행 초기 수많은 시스템 장애를 일으켰다. 지자체들이 여러 단점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17개 시·도별 행정정보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는 이유다.
시·도별 시스템 구축 또한 문제점이 없지 않다. 전국 단위 통계나 통합 데이터를 얻기 위해 17개 시·도 시스템 간 복잡한 연동이 필요하다. 시·도별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다 보면 표준화가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고 이에 따른 중복투자 우려도 크다. 시·도마다 시스템을 관리할 전문 인력과 기술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도 부담이다.
◆새정부 지방분권 정책에 역행 = 하지만 지자체들은 이 사업을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을 기준에 두고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행정정보시스템을 통합구축하면 지자체 업무 대부분이 중앙정부에 예속될 수 있고 전산자원 관리·활용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자체에도 전산시스템 관리 역량이 필요하고 지역 산업계에도 IT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효율성을 위한 중앙집중보다는 지역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시·도별 자체 구축을 정부가 나서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통합구축이 산업 불균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지역 업계 관계자는 “결국 지자체 예산을 중앙정부 산하기관과 일부 대기업들이 독식하는 상황이 벌어져 지역 IT 생태계가 소멸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