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보험·종투사·벤처투자 ‘모험자본 공급 확대’ 고삐

2025-08-13 13:00:04 게재

회계기준 적용 지원, IMA 사업인가 심사에 반영 예고

은행권, 중대재해 기업 불이익 ‘신용평가모형 개선’ 추진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생산적 투자 확대를 고려한 회계기준을 마련하고 인허가 심사에도 관련 내용을 반영하기로 하는 등 모험자본 공급에 적극 나섰다. 지난달 3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중자금 흐름을 생산적 영역으로 물꼬를 바꾸기 위한 금융 대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실질적인 이행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12일 금융위원회는 은행, 보험, 자산운용사, 벤처투자회사 등 자본시장 참여자 등과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고, 금감원도 같은 날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 간담회를 개최했다.

금융위는 지난달 28일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협회장 간담회를 가졌는데, 당시 생산적 투자 확대와 관련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회계기준을 변경해야 한다는 건의를 받았다. 후속 조치를 위해 이날 금융업권 전반의 회계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종합금융투자사업자 간담회 금융감독원은 12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자금운용 담당 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재완 부원장보 주재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 금융감독원 제공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회계기준 마련 = 금융위는 이날 간담회에서 ‘만기없는 환매금지형 인프라펀드’를 지분상품으로 보고, 투자자들이 관련 평가손익을 ‘당기손익’(손익계산서)이 아니라 ‘기타포괄손익누계액’(재무상태표)에 표시하는 회계처리를 투자시점에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은행, 보험, 운용사 등 투자자들이 장기인프라 투자 활성화를 위해 영구폐쇄형 인프라펀드에 대한 회계처리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주로 보험사들이 인프라투자 등 장기투자를 많이 하는데, 당기손익 변동성 때문에 비중을 계속 줄이고 있어서 시장에서는 폐쇄형 펀드구조를 짜서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을 논의해 왔다. 다만 회계기준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당국과 회계기준원의 판단이 필요했다. 회계기준원은 금감원과 함께 논의를 벌였고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거쳐 결론을 냈다. 일반적인 펀드의 경우 만기가 있거나 중도환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채무상품’으로 분류돼 관련 평가손익을 당기손익에 반영해야 하지만 ‘만기가 없고 환매가 금지된 인프라펀드’의 경우 발행회사가 투자자에게 원금을 상환해야 할 의무가 없는 만큼 ‘지분상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영구폐쇄형 인프라 펀드 투자의 평가손익이 당기손익에서 제외될 수 있게 됨에 따라, 금리나 경기 변동 등에 민감한 장기 투자시에도 투자자의 재무제표상 손익 변동성이 대폭 줄어들게 돼 금융권의 장기투자 유인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보험·운용사 등 주요 투자자들도 “해상·풍력 발전, 데이터 센터 등 대규모 SOC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확대를 적극 고려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함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비상장주식 공정가치 평가 가이드라인’을 개선하기로 했다. 공정가치 평가를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으로, 초기 기업은 미래 현금흐름을 예측해 공정가치를 평가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평가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지고 공정가치가 원가보다 더 의미 있는 회계정보를 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따라서 초기 기업들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공정가치 평가 부담을 덜어주고 원가를 중심으로 한 평가를 통해 회계정보의 실질을 높이는 방안을 금융당국이 검토하고 있다. 초기 기업들에 대해 좀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달라는 벤처캐피탈 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금융업권 전반의 의견을 수렴해서 회계투명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적 실질에 맞는 회계처리가 무엇인지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현장과 수요자 중심의 회계제도 개선과제를 지속 발굴·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종투사 모험자본 공급 실적 미흡” = 금감원은 12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 발행어음 발행·판매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4개 종투사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서재완 금감원 부원장보는 “초대형 IB(투자은행)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간 종투사의 모험자본 공급 실적이 미흡했다”며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해 종투사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종투사 총자산 중 모험자본 비중은 2.23%에 그쳤다.

서 부원장보는 “우리 경제의 진짜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유망기업을 선별·발굴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종합적인 기업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종투사가 금융투자산업의 선도자로서 담당해야 할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체계적인 모험자본 공급을 유도하기 위해 종투사 지정·인가 심사시 구체적인 공급 계획에 대해서도 심사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하반기부터 종합투자계좌(IMA) 영업이 가능한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종투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자기자본 8조원을 갖춘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두 곳이지만 최근 NH투자증권이 이사회를 통해 6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한 만큼,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자기자본 8조원을 충족하게 된다.

이날 참석한 종투사 임원들은 “발행어음 및 IMA를 활용해 벤처·혁신기업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하고 투자역량 강화, 리스크 관리 고도화 등 모험자본 공급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기반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은행, 중대재해 기업에 패널티 추진 = 생산적 금융 공급 확대와 함께 중대재해 기업에는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김병환 금융위원회장은 국무회의에서 “중대한 사고가 나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했다. 금융위는 이달 1일 은행권과 제2금융권 여신 담당자 등과 회의를 열고 중대재해를 은행의 기업대출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은행마다 신용평가 모형이 다른 만큼 은행연합회에서 현재 공통된 기준 마련을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ESG 중 S에 해당하는 중대재해를 신용평가의 감점 요인으로 반영하는 방식이다. 현재 신용평가 항목에서 중대재해는 비재무적 요소로 ESG 항목 내의 기업 평판 등에 반영되고 있지만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은행이나 2금융권의 기업대출과 함께 회사채 발행 등 시장차입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중대재해 기업을 엄단하겠다고 한 만큼, 향후 영업정지 등 제재가 가해질 경우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고 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등급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강한 행정제재가 가해질 경우 기업의 미래현금흐름에 당연히 변화가 생길 것이고 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등급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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