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유독 눈감는 세제·재정 목소리 낼까
노동·교육개혁 제시, 기재부 소관엔 침묵
이창용 “기재부, 한은 개혁안 큰 수요처”
구윤철 “경제주체 협업, 한은과 잘 협의”
한국은행이 정부 세제 및 재정운용 정책에도 의견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창용 총재 취임 이후 노동과 교육문제 등의 개혁과제에 목소리를 냈던 한은이 기획재정부가 소관하는 세제와 예산 등의 분야에서는 유독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 총재가 지난 7일 처음 만났다. 구 부총리가 취임 인사차 한은을 방문하는 형식의 이날 만남에서 두 사람은 양측이 앞으로 거시경제 전반에 대해 서로 협의하자는 데 공감했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이 싱크탱크로서 최대한 도와드리고 같이 협력하고 노력하겠다”면서 “가장 큰 수요처가 기재부가 될테니 나쁜건 버리시고 좋은건 선택해 주시면 한은 연구자들도 힘을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도 호응하고 나섰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경제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가 협업해야 한다”며 “절박감을 가지고 한은 총재와 잘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그러면서 “경제정책 방향은 구체적인 아이템 위주로 잡을 것”이라며 “그걸 하기 위한 재정과 세제, 규제 완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했다.
이 총재가 이날 싱크탱크 역할을 강조한 데는 한은이 각종 현안에 대해 안을 낼테니 정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가 적극 수용해달라는 요구로 읽힌다. 이 총재는 지난달 한은 창립기념식에서도 “새정부가 구조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길 기대한다”며 “한은은 이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적인 분석과 정책제안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은은 이 총재가 취임한 2022년 이후 노동 및 교육, 청년 문제 등에 대한 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지난해만 연간 100건 안팎의 각종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 정책 △고령층 계속 근로 방안 △청년층 취업 문제 △거점도시 육성과 대학교 지역별 비례선발제 등 파격적인 제안도 내놨다.
하지만 유독 세제와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은 물론 내부 연구자의 보고서도 거의 내놓지 않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논란이 됐던 기재부의 세수 추계 실패 및 금융투자소득세 논란, 최근 자본시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대주주 주식보유 기준, 배당소득세 분리 등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재정운용과 관련해서도 예산편성 지침이나 추경편성 등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입장은 없다.
한은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미국 연준은 재정에 대해 언급을 한다”며 “한은도 정부의 세제나 재정과 관련해 충분히 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은법에도 정부와 거시경제와 관련해 협의하도록 돼 있다”며 “재정과 통화정책은 거시경제의 양축이기 때문에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은 내부에서는 기재부 소관에 대한 입장 개진에 어려움이 있다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조사국에 재정 관련 팀이 있지만 인력과 데이터의 한계가 있다”면서 “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내려면 구체적인 자료에 기초해서 제대로 내놔야 하는데 자칫 반격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한은과 기재부는 지난해부터 차관급(부총재급) 단위의 정책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