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측근 ‘실세 금감원장’…동력 떨어진 금융감독체계 개편
금감원장 이찬진, 금융위원장 이억원 … 정부 정책에 ‘금융 지원 강화’ 예고
민변·참여연대 활동, 금융소비자보호 강화에 무게 … 금융전문성은 부족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이찬진 변호사가 임명됐다. 금융위원장 후보에는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인 이억원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명됐다.
전 정부에서도 대통령 측근 인사인 이복현 금감원장이 임명되면서 실세 금감원장으로 금융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현안에 강하게 목소리를 냈는데 새 정부에서도 실세 금감원장이 임명된 것이다.
이 원장은 14일 취임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금감원장은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1964년생인 이 원장은 이 대통령과 오랜 기간 친분을 이어온 인물이다. 서울 출신으로 홍익대부속고와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 이 대통령과는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노동법학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당시 ‘3대 무상복지 사업’으로 경기도와 법적 다툼을 벌일 때 참여연대 사회복지분과위원장이었던 이 원장은 성남시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이 대통령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에서도 변호를 맡았다.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였던 2019년 공개된 재산 내역에서 드러난 ‘사인 간 채무 5억원’의 당사자도 이 원장이다. 이 대통령은 본인 소유 아파트를 담보로 이 원장에게 5억원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 원장은 한 언론매체에 “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이자도 다 받았고 종합소득세 신고도 했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게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고위직을 지낸 한 금융권 인사는 “이복현 금감원장 당시 금융위원회 보다 금감원의 시장 영향력이 훨씬 컸던 전례를 고려하면, 이번에도 실세 금감원장이 온 만큼 금융위와의 역학관계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임자와는 결이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돌출 행동과 권한을 넘는 발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전임자와 달리 신중한 성격의 이 원장은 튀지 않는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원장은 최근까지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 사회1분과장을 맡아 보건복지, 여성, 고용 등 사회정책 전반을 설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지만, 금융전문가는 아니다.
따라서 금감원장으로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새 정부 정책 기조에 금융권의 지원을 강화하고, 민변과 참여연대 활동 등을 고려하면 금융소비자보호 강화에 보다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 공약에는 ‘감독범위 확대, 검사기능 부여 등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의 기능·독립성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정기획위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해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기구를 분리해 독립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조직 개편이 무산될 경우 현재 금감원 조직에서 소비자보호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약을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동력은 약화된 상황이다. 국정기획위의 조직 개편안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13일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내용이 빠졌고, 그 즉시 공석이던 금감원장 자리를 채우고 차기 금융위원장도 지명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장 공석이 길어지면서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들이 나오면서 임명을 단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세 금감원장이 실무를 파악한 후 조직개편의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수장이 임명되면 조직 개편을 하기가 쉽지 않고, 특히 금융소비자기구를 별도로 떼어내려면 (업무 분담을 위해) 실무적으로 수십개의 관련 법률을 다 손봐야 하는 데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인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금융전문가는 아니다. 1967년생으로 서울 경신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후보자는 행정고시 35회로 기획재정부 미래전략과장, 물가정책과장, 인력정책과장, 종합정책과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 국제금융과 서기관을 지냈지만 전체 이력에서 금융업무 경험은 부족하고 주로 거시경제 정책 전반에 관여했다.
이 대통령이 소위 금융권과의 유착 가능성이 낮은 인물들을 금융당국 수장에 임명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 후보자는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냈고 2021년 기재부 1차관으로 부임한 후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물러났다.
이 후보자와 친분이 두터운 금융권 인사는 “본인 주장을 강하게 하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귀담아 듣고 경청하는 스타일”이라며 “권위주의 의식도 없어서 관료 사회에서 신망이 높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 역시 정부 정책을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수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