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평화협정,영토-안보보장 교환 논의
18일 백악관 다자회담이 분수령 될 듯
미·러 합의안에 젤렌스키 EU는 ‘신중’
4년간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리는 다자회담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주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만나 ‘전쟁 종식’ 방안을 본격 논의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러 정상회담 후 “러시아와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동석했던 스티브 위트코프 외교특사는 CNN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이 나토(NATO) 제5조와 유사한 방식의 안보보장을 제공하는 데 사실상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나토 제5조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공격받으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대응한다는 조항으로 푸틴 대통령이 일정 부분 수용 의사를 보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런 ‘진전’에는 대가가 따른다. 러시아는 도네츠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상응해 유럽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확장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미국과 유럽이 나토식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우크라이나에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대신,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영토를 포기하는 구조다. 이른바 ‘영토 양보 대 안보보장’ 교환안이 본격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구상은 유럽 내부에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보장 발언에 환영을 표하면서도 “국경은 무력으로 바뀔 수 없다”는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도네츠크 등 점령지 포기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무기의 위협 아래서 푸틴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선 즉각적인 휴전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정상들은 17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입장을 정리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의지의 연합’ 참여국들은 우크라이나의 협상 당사자 지위, 살상 중단, 미국의 구체적 안보 보장 방안 등을 핵심 논의 대상으로 재확인했다. 아리안나 포데스타 EU 부대변인은 “이번 회의는 우크라이나의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평화 추구를 위한 단결을 재확인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미국 내부 분위기 역시 복잡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안보보장을 공식화한다면 매우 큰 조치가 될 것이며 그 결정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밝혔다. 그는 NBC 인터뷰에서는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검증 가능하고 강제력이 있으며 지속가능한 평화 합의”라며 “일시적 휴전은 오히려 전쟁 재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한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는 실질적 효과가 미미할 수 있으며 오히려 협상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제시한 이른바 ‘한국식 해법’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전쟁처럼 군사적 대치선을 고정하고 그 위에 미국이나 서방국가들의 군대를 주둔시켜 전쟁을 실질적으로 종식시키는 방식이다. WSJ는 “영국과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게 될 경우 1953년 이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며 남한을 방어한 구조와 유사할 것”이라며 “이런 결과는 푸틴에게 역사적 실패로 여겨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 모든 시나리오가 여전히 ‘합의 직전’ 단계라는 점이다. 루비오 장관은 “평화합의에 가까워졌지만 아직 의견이 엇갈리는 주요 분야들이 남아 있다”며 “협상은 진전이 있었지만 임박한 합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어디까지 책임질지, 유럽은 얼마나 협력할지, 러시아는 어떤 조건에서 물러설지를 결정짓는 중대한 기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안보 보장은 실용적이어야 하며 육상·공중·해상에서의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18일 백악관 회담은 우크라 전쟁의 향방뿐 아니라 향후 국제질서 재편과 유럽 안보의 미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