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철도 사망사고 ‘후진적 산재’ 정황

2025-08-21 13:00:35 게재

접근로 없어 선로 이동 중 열차 운행 … 경찰·노동당국, 합동감식 등 수사 탄력

경찰과 노동당국이 19일 경북 청도군 경부선 철로에서 발생한 열차 사상 사고 경위를 밝히기 위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후진적 산업재해’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노동당국이 공공부문 산업재해와 관련해 민간보다 더 강하게 제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수사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21일 경찰과 노동당국 등에 따르면 사고 원인 조사에서 코레일이 안전을 위한 업무 규정을 어긴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났다.

코레일의 ‘열차운행선로지장작업 업무세칙’은 선로 작업을 상례작업(선로에 열차가 운행상태)과 차단작업(선로에 열차의 운행이 중지된 상태)으로 구분한다.

사고 당일 작업자들은 폭우에 따른 철로 옆 옹벽의 훼손 여부 점검을 위해 상례작업 인가를 받고 현장에 투입됐다. 문제는 해당 작업을 위해 현장에 접근하려면 선로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부 작업자들 사이에서 “현장 접근을 위해 선로 바깥쪽으로 이동하다가 비탈면으로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는 구간에서 선로 위로 이동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방식으론 사고 반복 불가피 = 업무세칙에 따르면 외측레일 2m이내 위험지역에서의 작업은 차단작업으로 시행해야 한다. 아울러 열차 접근 시 안전한 장소로 작업원 대피가 가능한 작업, 전차 선로와 이격거리는 최소 1m 확보되는 작업 등의 경우만 상례작업이 가능하다.

이에 따르면 옹벽 점검작업은 상례작업에 해당하지만, 현장에 접근하는 방법은 이를 벗어난다.

앞서 철도노조도 “선로 작업은 현장 접근을 하다 보면 대피할 곳이 없는 경우도 많고 선로 위를 따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상례 작업이 없어지지 않는 한 사고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사고를 당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당초 코레일과 한 계약 업무가 아닌 작업에 투입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소속된 업체는 경부선 철도 주변 교량·터널 점검을 위한 용역계약을 하고 관련 업무를 해왔다. 그러나 폭우 피해 등을 이유로 코레일은 2~3주 전 이 업체에 원래 계약 내용에 없는 주변 경사면 점검을 지시했다. 이에 해당 업체는 현장 안전관리를 담당할 인원을 급하게 섭외하고, 다른 지역에서 터널·교량 점검 업무를 하던 인원을 불러 현장에 투입했다.

기존 업무에다가 계획에도 없던 업무까지 수행해야 하는 탓에 하청업체가 급조된 안전 대책에 의지해 직원들을 현장에 투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코레일측은 “최근 수해로 인해 피해 여부를 점검해야 하는 지점이 발생해 업체와 협의해 추가 위탁비를 지급하기로 하고 점검을 실시한 것”이라며 “업체가 해오던 작업과 유사한 형태의 상례작업이었던 만큼 기존 안전 수칙을 이번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했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더 강하게 제재” = 이런 가운데 경찰과 노동당국의 수사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경북경찰청은 형사기동대장을 팀장으로 한 30여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열차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전날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합동감식을 했다. 합동감식반은 사고 원인의 중요 단서가 될 선로 너비와 기차의 폭, 노반 폭 등을 측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반은 철도나 도로를 부설하기 위해 다져놓은 땅을 말한다.

경찰은 사고 현장 주변에 작업자 대피 공간이 있었는지 등도 조사했다. 또 코레일의 구조적인 안전 시스템 문제점과 기관사나 현장 관계자의 과실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 원인을 살펴보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노동자를 위한 관련법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노동청은 사고 예방을 위한 인력이 갖추어졌는지와 사고 이후 긴급구호조치 등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등도 확인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번 사고에 대해 엄정한 대응을 시사하고 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표적 위험 사업장인 철도 사업장 사고를 발본색원해 두 번 다시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 부문에는 (민간보다) 더 강하게 (제재를) 하겠다”며 “코레일에 노동부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한을 발휘해 엄정한 수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지방검찰청도 2차장검사를 팀장으로 한 수사전담팀을 만들어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검찰이 안전사고와 관련해 수사전담팀을 꾸린 것은 이례적이다.

◆피해자 대부분 하청업체 노동자 = 앞서 지난 19일 오전 10시 52~54분쯤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동대구역을 출발해 경남 진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근처에서 작업을 위해 이동 중이던 근로자 7명을 치었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5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를 당한 근로자 7명 가운데 1명은 코레일 소속이고, 나머지 6명(사망 2명·부상 4명)은 구조물 안전 점검을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파악됐다.

한편 코레일에서는 그동안 작업중 노동자들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22년 11월에는 30대 직원이 야간에 시멘트 수송용 벌크화차 연결·분리 작업을 하던 중 화물열차에 치여 숨졌다. 지난해 8월에는 구로역 선로 5~6m 높이에서 점검·보수작업을 하던 중 옆 선로를 지나던 열차가 공중에 있던 작업대를 들이받으면서 30대 코레일 직원 2명이 사망하고, 50대 직원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장세풍·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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