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노동운동가 출신’ 첫 노동부 장관 방용석 전 의원 별세
1970~19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이끌었던 노동운동가 출신 첫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방용석 전 국회의원이 24일 낮 12시 6분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충북 진천 출신인 고인은 19세 때인 1964년 원풍모방의 전신인 한국모방에 입사했다. 제대로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일하는 여공들의 현실을 본 고인은 1972년 한국모방 민주노조 창립을 주도했고 1974년 노조지부장이 됐다.
1970년대 초 한국모방 청계피복 동일방직 등 섬유업체를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일어났다. 고인은 사명을 원풍모방으로 바꾼 뒤에도 계속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원풍모방노조는 1979년 YH무역 노조가 경찰 탄압으로 무너진 뒤에도 1983년 초까지 버텼다.
1980년 7월 신군부의 ‘정화조치’에 따른 계엄사의 지시로 섬유노조본부에 의해 조합원 자격 제명조치를 당했다. 고인은 노동운동을 하면서 1975년과 1982년 두차례 구속돼 옥살이했다.
출소 후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후 김대중 당시 총재의 노동 담당 특별보좌관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01~2002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에 이어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고졸’에 ‘노동운동가 출신’ 첫 노동부 장관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2004~2007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2010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인터뷰에서 “(노동부) 장관이 될 때 노조의 과도한 기대감과 기업의 지나친 불신을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명인숙씨와 2남(방성일·방성진), 며느리 이은영·서보미씨 등이 있다. 빈소는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201호실, 발인 26일 오전 9시, 장지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 (02)857-0444.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