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삼성생명 ‘일탈회계’와 소비자보호
이재명정부 첫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된 이찬진 변호사는 오랫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다. 그래서인가. 금융회사들이 밀집해있는 서울 여의도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로 꼽히는 이 원장의 말과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원장이 지난달 18일 취임사에서부터 임원회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 첫 외부 공식 행사인 은행장 간담회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말은 ‘소비자보호’다. 금감원 모든 업무를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바라보고, 직원들이 소비자보호 DNA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최근 회계이슈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생명 사건에 대해서도 이 원장이 높은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은 오래 전 유배당 보험계약자들이 낸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고, 그 결과 삼성그룹은 현재의 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보험계약자들은 배당을 받지 못했고 ‘일탈회계’ 이슈도 발생했다.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돌려줘야할 몫을 보험부채가 아닌 ‘계약자지분조정’으로 표시하는 극히 예외적인 회계처리를 인정받아왔다.
그런데 일탈회계를 영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를 놓고 최근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복잡한 회계이슈 같아 보이지만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사안이다. 삼성생명은 보험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로 산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서 계약자들에게 배당을 하는 게 마땅하다.
만약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영원히 팔지 않겠다고 하면 보험계약자들이 모두 사망한 이후에 계약자 몫(6월 말 기준 약 9조원)은 삼성생명에 귀속된다. 보험업법의 기본정신에서 벗어나 계약자의 신뢰와 보호를 저버리는 일이다.
이는 회계이슈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보험사가 보험계약자의 몫을 돌려줄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데, 결과만 놓고 보면 ‘어떻게 하면 돌려주지 않을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생명이 적용한 일탈회계를 다른 생명보험사들도 그대로 받아들여서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을 재무제표에 두고 있다.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일탈회계가 보험사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게 된 셈이다.
한국이 국제회계기준(IFRS)을 전면 도입한 것이 맞는지에 대한 국제회계기구의 지적이 여러 차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상식에 맞는 국제회계기준 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회계기준원의 문제제기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해왔고,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일탈회계를 중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삼성생명도 원칙을 따라야 하고, 그 원칙은 소비자보호와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