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완벽 외교’, 그 이후는 어떻게 됐나

2025-09-11 13:00:01 게재

“전쟁은 외교의 연장이다.” 전격전의 창시자 클라우제비츠의 외교 명언이다. 이를 거꾸로 “외교는 전쟁의 연장이다”고 해도 맞을 듯하다. 전쟁과 외교는 불신으로 주조된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겠다.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하고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뒷수습을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회의가 열린다. 영국 프로이센 러시아 등 90개 왕국과 53개 공국이 참석한다. 패전국 프랑스는 도마 위 생선 격이다.

전후 영토의 재분배와 세력균형 왕정복고가 초점이었다. 자국 이익이 우선인 협상테이블에서 파이 한 조각도 양보하기 어렵다. 그러니 회의는 부지하세월로 늘어질 수밖에. 그래서 이런 비판이 나왔다. “회의는 춤춘다. 나아가지는 않는다.” 마치 회의만 하는 요즘의 UN처럼 말이다.

빈 체제는 1814년 9월 1일부터 1815년 6월 9일까지 9개월 넘게 걸려 수립됐다. 오스트리아는 잘츠부르크를 회복하고 베네치아를 획득한다. 영국은 몰타와 세일론을 얻고 러시아는 폴란드 대부분과 핀란드를 보장받는다.

그러면 패전국 프랑스는 어찌 됐을까. 프랑스에는 외교의 달인 탈레랑이 있다. 그는 루이 18세에게 “외교관보다 셰프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바로 요리사의 왕이자 왕들의 요리사로 불린 마리앙트완느 카렘이다. 연일 ‘춤추는 회의’에 프랑스의 포도주와 요리를 대량 투입했다.

“외교관은 자신 언변에 자아도취 하는 걸 가장 경계해야 한다”던 그다. 승리감과 포도주에 취한 승전국의 방심, 여기에 상호 견제심리를 이용했다. 전쟁에 졌지만 사실상 피해는 거의 전무했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각국 정상들의 칭찬 릴레이와 골프 접대가 여기서 비롯됐을까.

전쟁과 외교는 동전의 양면

탈레랑의 ‘줄타기 외교’는 패전국과 약자의 설움이 바탕일 게다. ‘벼랑 끝 전술’도 있다.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려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너와 내가 함께 죽거나 비록 나만 죽어도 너 역시 성치 못한다는 협박이다. 핵을 내세운 북한이 대표적이다. 생존이 우선인 약자의 외교이다.

‘미친 척 전략’도 있다. 평온한 국가관계에 느닷없는 폭탄을 던져놓고 해체하려면 손해를 감수하라는 방식이다. 관세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다. 힘을 앞세운 강자의 외교이다.

현대에만 그런 게 아니다. 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도, 삼국지의 천하삼분도 외교의 원형이다. 대표적으로 ‘완벽(完璧) 외교’가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화씨벽(和氏璧)이란 보물이 있다. 초나라 변화(卞和)가 캔 원석이 어찌어찌 조나라 혜문왕 손에 들어간다. 이를 진나라 소양왕이 탐낸다. “성읍 15개와 화씨벽을 바꾸자.” 혜문황은 “진왕이 화씨벽만 받고 성을 주지 않으면 어찌하나” 걱정한다. 논의 끝에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한데 거절할 수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예나 지금이나 힘이 지배하는 국가관계다.

외교사절로 파견된 인상여는 일단 화씨벽을 건넨다. 하지만 진왕은 15개 성읍을 줄 생각이 없다. 이에 인상여는 “벽옥에 하자(瑕疵)가 있다”면서 건네받고는 외친다. “보통인들도 서로 속이지 않는데 큰 나라가 약속을 어기느냐. 벽옥을 깨뜨리고 나도 죽겠다”고 위협한다. 벼랑 끝 전술이다.

진왕은 “알겠다. 기다리라” 했지만 허튼 소리임을 아는 인상여는 화씨벽을 몰래 조나라로 돌려보낸다. 진나라로서는 15개 성읍을 주기도 싫고, 화씨벽도 조나라로 돌아간 마당이다. 사신을 죽여봐야 천하의 인심만 잃는다. 이렇게 인상여도 살고 화씨벽을 빼앗기지도 않았다. 이를 일컬어 완벽(完璧)이라 했다.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에서 비자문제로 체포돼 구금된 300여명 처리가 한미간 뜨거운 이슈가 됐다. 한미정상회담에서 500조원 투자패키지를 약속한 시점에 한국 공장을 타깃으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단속이 이뤄진 거다. 게다가 쇠사슬로 묶어 이송하는 장면에 국민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조 현 외교부장관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문제는 앞날이다. 대미 투자의 효용도 유지하고 안보동맹도 굳히면서 비자문제 등 한국민 처우도 국격에 맞도록 완벽 외교를 기대한다.

완벽한 대미 외교 앞날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원조 ‘완벽 외교’의 결말은 씁쓸하다. 화씨벽은 조나라로 돌아왔지만 세월이 흘러 결국 진나라 소양왕의 증손자인 진시황 손에 들어간다. 진시황은 화씨벽에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이란 글을 새기고 국새(國璽)로 삼는다. 뜻은 하늘의 명을 받았으니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라는 거다. 그럼에도 진시황은 49세에 죽었고, 천하 제국은 3세황제에 끝났다.

완벽 외교의 과정과 결말은 힘의 외교 시대에 모두가 유념할 일이다.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는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살아남지 않으면 원칙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토머스 제퍼슨도 “외교는 국가의 생존을 위한 예술이다”고 하지 않던가.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