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칼럼
‘잘 나가는 이웃’ 등장을 환영해야 할 이유
‘중국 중성미자 실험’이라는 기사를 접하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왕이팡(王貽芳) 박사다. 그는 중국 최고의 중성미자 물리학자이고, 베이징 소재 고능물리연구소(IHEP) 소장이다. 필자가 접한 소식은 왕 박사가 이끄는 중성미자 실험(주노JUNO실험)이 8월 말 실험시설 구축을 완료하고, 데이터를 받기 시작한다는 거다. 필자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지도 않은 중국 중성미자 물리학자 이름을 아는 이유가 있다. 그는 김수봉 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와 한때 경쟁 관계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중성미자 변환 상수라는 걸 알아내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김수봉 교수는 전남 영광의 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실험을 했다. 원전에서는 핵분열 과정에서 중성미자가 쏟아진다. 이 중성미자들을 갖고 중성미자 질량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했고, 실험 이름은 레노(RENO)였다. 왕이팡 박사는 당시에는 중국 광둥성에서 ‘다야베이’ 실험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2012년 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결과를 내놨다. 그리고 국제 중성미자 물리학자 커뮤니티가 알아주는 상(브루노 폰테코르보 상)을 2017년에 러시아에서 같이 받았다.
거기까지였다. 왕이팡 박사는 후속실험(JUNO실험)에 착수했으나 김수봉 교수는 다음 단계 실험을 시작하지 못했다. 과학기술부가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동분서주했으나 결국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한국 중성미자 물리학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중국 중성미자 물리학자들은 JUNO실험 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25년 8월말 ‘JUNO실험의 데이터 수집 시작’을 외부 세계에 알렸다.
JUNO실험은 광둥성 광저우에서 가까운 장먼(江門)이라는 곳에 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갖고 연구한다. JUNO실험 시설은 세계 최대 규모로 미국보다는 6년, 일본이나 유럽보다도 3년 정도 앞선다고 알려졌다. 2014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중국정부는 4200억원을 투입했다.
중성미자 경쟁에서 한국은 탈락
중성미자는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 중 하나다. 중성미자가 우주의 미스터리들을 풀 열쇠를 많이 쥐고 있다고 물리학자들은 생각한다. 중성미자에 노벨물리학상이 4번이나 주어졌지만 앞으로도 몇 번이나 더 돌아갈지 모른다고 생각들 한다. 그만큼 연구할 게 많다.
중성미자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가 더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나와 있다. 현재 물리학자들은 알려진 세 개 각각의 질량도 모른다. 현재 질량 관련해 알고 있는 건 세 종류 간의 크기 차이다. 이걸 알아내는 데 기여한 사람들 명단에 김수봉과 왕이팡이 들어 있다.
이걸 알아냈으니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 세 개 중 어느 것이 가장 무거운지, 가벼운지를 확인하는 거다. 중국의 JUNO실험은 이게 목표다. 그들은 한발씩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더 이상 발을 못 떼고 있다.
김수봉 교수는 뭘 하나? 이런 저런 곡절이 있으나 그가 중국에 있다고 필자는 알고 있다. 한국은 중성미자 질량을 알아내려는 경쟁에서 탈락했고, 중국은 이제 시간이 지나면 결과를 국제사회에 뽐내듯 발표할 거다. 물리학에서 중국이 굴기했음을 보이는 한 사례가 된다. 이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한국의 경제적인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외국인들로부터 여러 번 받은 적 있다. 그들은 한국은 왜 성공했나를 궁금해 했다. 필자는 한 때는 ‘교육열’이라고 답했으나 언제부터인가 이웃에 잘 사는 나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걸 ‘잘 나가는 이웃’ 가설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 이웃이 왜 잘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한국에게 필요한 건 ‘잘 나가는 이웃’이었다. “우리도 (일본처럼) 한 번 잘 살아보자”라는 새마을 노래 가사가 1970년대에 왜 나왔겠는가? 세계 2등 경제를 모델로 삼아 뛰다 보니, 한국도 살림이 비슷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잘 나가는’ 새로운 이웃이 나타났다. 중국이다. 중국은 테슬라 뺨치는 자율주행 전기자동차를 만들고, 미국산 챗GTP보다 가성비가 월등한 딥시크를 내놨으며, 전기자동차 배터리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중국 테크 산업의 부상을 보고 세계가 놀라고 있고, 이웃인 한국은 당황해하고 있다.
중국에 우위 유지할 시간 좀더 늘려야
필자는 ‘잘 나가는 이웃’이 새로 등장한 걸 환영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이라는 오랜 벤치마킹 모델의 존재감이 약해진 느낌이 있고, 그로 인해 우리 스스로도 방향 감각을 잃은 듯했다. 그런데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게 하는 ‘잘 나가는 이웃’이 나타났으니 다행히 아닐까?
수천년 관계사에서 중국보다 한국이 낫다는 자부심을 우리가 갖게 된 건 현대의 짧은 기간이다. 1970년 이후 50년이다. 다시 중국에 뒤지면 되겠나? 50년은 너무 짧았다. 우위를 유지하는 시간을 더 길게 가져가야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