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논란 ‘삼성생명 회계처리’ ③삼성전자 지분 평가방식
보험사만 ‘취득원가’로 평가…'시가'로 바꿔야 ‘특혜’ 논란 벗어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 취득원가 5442억, 시가 평가시 38.7조에 달해
금감원 ‘일탈회계 중단’ 결정해도 … ‘보험계약자 몫’ 보험부채로 분류 안할 듯
시가로 바꾸면 보험업법상 29.3조 가량 매각해야 … 유배당 보험계약자 배당 가능
삼성생명이 오랫동안 국제회계기준(IFRS17)에서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일탈회계’를 유지해왔지만 금융당국은 조만간 일탈회계를 중지하는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일탈회계 적용을 중단하기로 방향을 잡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의 질의서를 접수받아 회신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금감원의 결정이 나오면 삼성생명은 앞으로 재무제표에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일탈회계 항목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 올해 말 결산에서는 변화가 예상된다.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당금을 그동안 보험부채가 아닌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으로 표시했지만, 이제는 자본 또는 보험부채로 분류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보험계약자들이 낸 돈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했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 배당을 지급한적이 없다
상식적으로 보면 보험계약자에게 줘야 하는 배당이라는 점에서 ‘보험부채’로 하는 게 맞지만, 삼성생명은 자본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회계기준은 유배당 보험계약에서 발생할 배당금에 대해 관련 현금흐름을 추정하고 가정과 위험을 반영한 할인율을 사용해 부채를 측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다만 운용하는 보유자산이 처분되거나 경영진에 의해 자산의 구체적인 처분계획이 수립된 경우에만 해당 자산의 예상 처분손익을 포함해 보험부채를 측정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올해 반기보고서에서 “유배당 보험계약의 예상되는 장래 이익에 따른 계약자 배당 관련 보험부채금액을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측정할 경우, 연결실체가 인식해야 하는 보험부채금액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처분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탈회계를 중단하고 국제회계기준으로 복귀할 경우,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면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의 금액은 자본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현재 삼성생명의 6월말 기준 재무제표에는 8조9358억원이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으로 잡혀 있다.
삼성생명이 ‘보험계약자 몫’을 자본으로 분류할 경우 금감원이 일탈회계를 정상화시키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회계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일탈회계 논란 끝나도 더 큰 논란 남아 = 회계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 보험계약자들에게 배당을 지급하면 된다.
하지만 매각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 일명 ‘삼성생명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생명은 일탈회계와 별개로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의 평가방식과 관련한 회계처리에 있어 또 다른 특혜 논란에 휩싸여있다.
다른 금융회사들은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할 때 총자산과 자기자본, 다른 회사의 채권 또는 주식의 소유금액의 평가 기준을 모두 ‘시가’로 적용한다. 하지만 보험회사의 경우는 다른 회사의 채권 또는 주식의 소유금액의 평가 기준을 ‘취득원가’로 적용하게끔 보험업 감독규정에 명시돼 있다. 특혜성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이 법이나 대통령령이 아닌 금융당국의 감독규정에 의해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법은 보험회사가 다른 회사의 채권 또는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 그 보유금액이 보험회사 총자산 혹은 자기자본의 일정 비율을 초과하지 않도록 한도를 정해 보험회사의 자산운용을 규제하고 있다. 보험금을 적시에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하기 위해 자산운용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106조 1항에 따른 자산운용비율 규제를 보면 제6호에 ‘대주주 및 자회사가 발행한 채권 및 주식 소유의 합계액’은 자기자본의 60% 또는 총자산의 3% 중 최소 금액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6월말 기준 삼성생명의 자기자본은 33조6500억원이며, 총자산은 319조원이다. 자기자본의 60%는 20조1900억원, 총자산의 3%는 9조5700억원이다. 따라서 더 적은 금액인 9조5700억원 초과하는 계열사 주식은 보유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과 벌금,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회계상 취득원가를 적용받기 때문에 약 5442억원이다. 총자산의 3%를 초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가평가를 적용할 경우 삼성전자 지분 8.51%에 대한 평가액은 주당 7만6500원(9월 15일 종가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약 38조8700억원이다. 총자산 3%를 초과하는 금액은 29조3000억원에 달한다. 초과분을 매각할 필요가 있고, 그럴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8.51%에서 약 2.1%로 줄어들게 된다.
◆다른 업권과 형평성 차이, 첫 개정안 발의 후 11년 지나 = 삼성생명법을 대표발의한 차규근 의원(조국혁신당·비례)은 “IMF 사태 이후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회계처리를 하는 것이 유가증권의 현재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투자신탁회사들이 파산에 이른 것을 계기로 모든 유가증권을 평가할 때 시가 등을 반영해 작성된 재무제표상의 가액을 기준으로 하도록 변경됐으나 보험회사만 예외적으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고 밝혔다.
차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에 대해 “채권 또는 주식의 가격이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경우 총자산과 채권 또는 주식의 소유금액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해 규제할 때와 비교해 자산운용비율이 왜곡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에 자산운용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필요한 총자산, 자기자본, 채권 또는 주식 소유의 합계액은 회계처리기준에 따라 작성된 재무제표상의 가액을 기준으로 하도록 정함으로써 보험회사 자산운용의 실질적인 안정성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산운용비율을 초과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보험계약자의 돈으로 다른 회사를 지배하는 현상을 방지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보험업감독규정에서 주식·채권의 소유금액 계산 방식과 관련해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 규정은 2000년에 신설됐다. 그 이후 정치권의 지적과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이를 개정하지 않고 있다.
2014년 4월 이종걸 민주통합당 의원이 19대 국회에서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평가(회계처리기준에 따라 작성된 재무제표상의 가액)로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처음 대표발의했다. 이후 20대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동일한 취지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여러 차례 발의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21대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보험업법에서 별도의 위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업감독규정에서 주식·채권 소유금액을 취득가액 기준으로 적용하도록 규정한 것은 다른 업권과의 형평성 측면과 시가 적용시 특정 보험회사만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특혜가 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올해 2월 22대 국회에서 차 의원을 중심으로 18명의 의원이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기형·김영환·김남근 의원 등 3명이, 조국혁신당은 차규근·신장식·김선민·박은정·정춘생·김준형·강경숙·이해민·황운하·김재원·서왕진·백선희 등 12명이 참여했다. 진보당 윤종오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 등 3명도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 주식 7년간 나눠 매각 = 보험업법 개정으로 영향을 받는 보험회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두 곳뿐이다.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삼성생명의 전체 자산운용 중 삼성전자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약 0.17%다. 하지만 이를 시가 기준으로 산출하면 약 12.2%가 된다. ‘총 자산 3%룰’에서 보면 약 9%p 이상을 초과인 셈이다.
개정안은 부칙에 7년(5년 + 금융당국이 2년 연장) 간 나눠서 초과 보유 주식을 매각하도록 명시했다. 법 시행 당시 제106조의 자산운용비율을 초과하는 보험회사는 법 시행일부터 최대 7년 이내에 해당 비율에 맞춰 해당 주식을 매각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비율을 초과하는 부분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최대 7년 동안 매각해야 한다.
개정안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자산운용비율을 초과해 보유하는 채권 또는 주식의 합계액의 20% 이상을 매년 해소하는 실행계획을 수립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초과 보유한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달 열린 ‘삼성생명 회계 처리 논란’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온 손 혁 계명대 교수는 “중요한 점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마련하고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처음 약속한 과실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삼성생명법을 이번 회기에 통과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물론 삼성생명법과 동시에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삼성바이오 및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등으로 숨통을 함께 터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시대가 바뀌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고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는 현 상황에서 기존의 삼성그룹의 세금 없는 다양한 편법(CB, BW) 등으로 인한 승계와 삼성물산 합병처럼 주주에게 손해를 보는 상황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는 물론 규제당국,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배당 보험자에 ‘이익배분’ 특례 명시 = 개정안에는 유배당 보험계약자에 대한 이익배분 특례가 명시돼 있다. 부칙에 ‘보험회사는 106조에서 정한 자산운용비율을 초과해 보유하는 채권 또는 주식을 매각해 발생한 매각 차익을 배당 보험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보전하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특례를 뒀다. 다만 주식을 매각한 최초 연도는 적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배당을 받지 못한 삼성생명 유배당 보험계약자를 위한 고려한 조치다.
유배당보험은 대부분 고금리 상품으로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 삼성생명도 유배당보험으로 손실을 입었다는 입장이다. 개정안 부칙에 따르면 주식 매각 차익을 첫 해에만 유배당보험 손실을 보전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고 그 이후에 발생하는 차익은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배분해야 한다.
정명호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현재 생명보험사가 보유 중인 투자자산 중 장기투자자산의 경우 과거 유배당 보험계약자의 기여에 의해 형성됐다는 측면에서 해당 매각 차익이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배분될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기존 유배당보험의 손실을 주주가 부담해온 상황에서 매각 차익의 대부분이 유배당 보험 계약자에게 배분될 경우 주주의 합리적 기대이익 및 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생명보험협회의) 의견도 함께 감안해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는 개정안과 관련해 국회에 “여러 견해와 현실적 고려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삼성생명측은 특혜 논란, 보험법개정안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