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지난 3일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북러 정상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중국이 평화와 협력의 편에서 반미 전선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비슷한 시간, 미국 조지아 이민국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현장을 급습, 우리 근로자 316명을 ‘노예처럼’ 구금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따지고 보면 모두 미중 패권경쟁과 연동된 일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들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상호작용을 하면서 국가의 전략적 선택과 생존 방식을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게 된다. 한국이 유념할 것은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한국의 정치적 분열이 부딪칠 경우 정책 공간의 축소, 외교의 위축 등 혼선과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국내정치가 외부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강대국이 국내의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 일상화될 위험이 커진다.
12.3 비상계엄은 현직 대통령이 군과 정보기관, 관료와 극우 정치세력을 동원해 국가 전복을 기도한 내란이었다. 그런데도 윤석열과 그 공범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지지부진하다. 특권 기득권 세력이 집요하게 역사적 심판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될 지경이다.
내란은 끝났다. 지금은 여야가 새로운 정치질서를 고민할 시간이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세력, 극우세력을 과감히 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상원 수첩’대로 됐어야 한다는 송언석 원내대표의 독백은 이런 당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권적 권력에 대한 민심의 분노를 보고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으니 오만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대법원장 퇴진론, 내란전담재판부 논의를 자초한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망할지라도, 국민이 죽을지라도?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남긴 말이다.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의 변화를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과거를 답습하다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희극을 낳게된다는 경고였다. 윤석열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쿠데타의 비극을 호기롭게 재현하려고 12.3내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거센 국민적 저항을 넘지 못했다. 단죄되지 못했던 쿠데타에 용기를 냈을지도 모르지만 시대변화를 외면하고 권위주의 시대의 강압적 통치방식을 고집한 댓가다.
조선의 관료들 역시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이런 허위와 특권의식을 놓치 못했다. 병자호란 직전 청의 침공 위협이 절정에 달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나라가 망할지라도 명에 대한 도리를 버릴 수 없다”는 상소를 올리기에 바빴다. 삼전도의 굴욕을 씻겠다고 북벌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실현 가능한 전략이 아닌 권력자의 정치적 눈가림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은 자주와 외세, 분열과 통일, 독재와 민주 사이의 험로를 헤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최근 국제정치의 격동과 국내 정치의 혼란이 얽혀들었던 과거의 패턴이 재현되고 있다. 이전의 파국적 좌절을 반복하지 않는 길은 죽은 세대의 전통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악몽처럼 짓누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관성이 현재의 창조적 가능성을 억압하지 않고,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완고한 해석이 우리의 상상력을 꺾지 않도록 해야 된다. 외부의 격동만큼 위험한 것은 우리 자신의 협애한 시야와 경직된 인식이다.
굳이 적대하지 않아도 될 중국을 대놓고 적대하거나 북한을 우격다짐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정신승리법이 우리 정책공간을 스스로 허물고, 외교일선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재조지은’을 되뇌이며 청과의 적대를 불사했던 조선의 교조성은 오늘 우리의 대미관계에 저항감없이 투영되고 있다.
트럼프에게 한국의 ‘부정선거’를 밝혀달라는 식의 요구를 해대는 극우적 논리가 그것이다. 역사의 비극적 경험을 되풀이하여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을 잊은 어리석은 짓들이다.
죽은 전통이 현재 우리를 짓누르지 못하게
이재명정부 100일,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과 꿈, 일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는 것에 일단 안도한다. 60%대의 긍정평가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호의 앞 길은 험난하고 그 전도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국제질서는 지각변동 중이고, 극우세력과 기득권 집단의 혁파도 시급하다.
기존의 모든 것을 창조적으로 파괴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이처럼 난마같이 얽힌 문제들을 헤쳐가려면 우리 역사에서 일궈낸 깊은 통찰력과 전략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특히 작금의 정치지형에서 한국의 권력엘리트들은 내부 분열이 항상 외부의 개입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역사의 법칙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