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한국기술자 박대한 트럼프정부
이달 초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짓고 있는 75억달러(약 10조원) 규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 노동자 300여명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줄줄이 체포돼 쇠사슬에 묶여 억류되는 광경은 충격이었다. 그건 마치 테러 진압작전을 방불케 했다.
이번 단속으로 공장 건설과 운영을 위해 초빙된 기술자들을 포함해 총 475명이 구금됐다. 그중 300명이 한국 국적자였다. 상당수는 단기체류 비자나 장비 설치 목적의 합법 비자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불명확한 행정절차와 과도한 단속으로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내몰렸다.
이것은 단순한 노동문제가 아니다. 배터리 공장은 미래산업의 심장부다. 청정에너지 기술 경쟁에서 거북이걸음으로 뒤처진 미국이, 정작 막대한 돈을 들여 자국 내 전략 산업의 토대를 쌓아주는 한국 기업 기술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트럼프의 정치 구호가 무색해진 순간이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간 뒤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바꾸며 협력을 언급하고 양국 관계자들이 외교채널을 통해 비자문제 수습에 나선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은 쉽게 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기후변화를 ‘중국의 사기극’ 정도로 치부하며 화석연료 부활을 부르짖고 있다. 그런 기조 속에서 이민자 단속과 반외국기업 정서가 겹쳐 나타난 것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다. 미국 언론도 이번 사태를 두고 “경제전략과 외교전략의 정면충돌”이라며 정책의 자가당착을 지적했다.
미 언론, '트럼프 정책의 자가당착' 지적
반면 중국은 치밀하다. 뉴욕타임스가 유럽특허청(EPO)과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은 “모방자에서 혁신자로 변신했다.” 2000년 국제 경쟁력이 있는 특허신청이 고작 18건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5000건에 이르렀다.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2025’ 프로젝트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중국 정부는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풍력 등 10대 핵심 산업을 선정하고 보조금·금융 지원, 인재양성에 집중했다. 전국 40곳 이상 대학원에 배터리 화학 및 금속 소재 연구과정이 있고, 기업들은 정부 지원 아래 경쟁하며 특허를 대거 쌓았다. 살아남은 강자는 해외시장까지 진출하며 글로벌 표준을 선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경제적 다윈주의(Economic Darwinism)’라 부른다. 정부가 전략산업을 지정해 막대한 지원을 쏟으면 기업들이 몰려들어 경쟁적으로 특허를 출원한다. 이후 정부가 지원을 철수하면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되고 소수의 강자가 살아남아 세계 시장을 장악한다. 자유시장 경쟁을 전제로 한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정부·자본·인재를 전략적으로 결합해 청정기술 분야에서 기술패권을 빠르게 구축했다.
CATL과 비야디(BYD)는 값싸고 안전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해 테슬라와 BMW에 공급하며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서방선진국 기술을 빼낼려고 온갖 술수를 쓰던 중국이 이제 자국 청정에너지기술 해외유출을 제한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어떤가. 트럼프정부는 화석연료 산업에 매달리며 외국 기업과 기술 인력에는 배타적 태도를 보인다. 조지아 사태가 보여주듯 필요할 때는 한국 기술에 의존하면서도 정작 현장에서는 무심한 처사를 반복한다. 이런 정책이 지속된다면 미국은 청정기술 경쟁에서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미래 에너지의 축이 이미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무게추는 중국 쪽으로 기울었고, 미국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곤란과 기회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결국 한국 기업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중국과 기술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국은 ‘브리지’이자 동맹자원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조지아 배터리 공장 사태는 단순한 이민단속이 아니다. 그것은 청정기술시대를 맞아 각국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미래를 준비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미국이 과거의 에너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면 중국은 미래의 자리를 선점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흔들림 없는 전략이 필요하다.
청정에너지 혁신의 주도국 자리매김해야
정부는 청정기술 연구개발에 장기적 투자를 보장하고 인재양성과 국제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기업은 소재·부품·재활용 기술을 포함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글로벌 시장과의 협력을 다변화해야 한다.
결국 한국이 생존하고 도약하는 길은 기술 자립과 전략적 협력이라는 두 날개에 달려 있다. 미국은 언젠가 혁신기술로 무장한 한국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때 한국은 단순한 협력 대상이 아니라 청정에너지 혁신의 주도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