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칼럼

비정상적 국회운영을 경계한다

2025-09-24 13:00:02 게재

얼핏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가장 큰 권한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국가권력의 중심축은 법률 제정권을 가진 의회다. 대통령과 사법부의 권한행사는 법률적 근거나 의회의 동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입법권을 가진 의회가 권력의 출발점이 된다. 3권분립의 원칙은 권력 독점과 집중을 경계하고 다수의 의견이 수렴되어 국가 권한이 행사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의회는 구성과 운영에서 다양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양보와 합의가 기본 덕목이 된다. 따라서 의회에서 정당 간 타협은 필수적이며 갈등의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의회는 시끄럽고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꽤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헌법 41조에 따라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국회 운영은 자율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국회법을 살펴보면 국회법을 어겼을 때 이를 규제할 강제조항이 없다. 예를 들어 국회법 5조에 국회 개원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한 후 7일 이내로 명백히 정해져 있지만 16대 국회를 제외하곤 모두 지각 개원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적 기대와 권한보장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다양성 존중과 자율성의 기반에서 운영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관행과 편법을 답습하는 악순환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임위에서 벌어지는 나쁜 관행의 일상화

국민의힘은 25일 본회의부터 모든 법안에 대해 무한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예정대로 여당이 69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면 각 법안에 24시간 필리버스터가 가능하므로 최장 69일간 진행되는 것이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에서 도입한 필리버스터 제도는 쟁점법안을 대상으로 소수당이 의사진행을 지연시키고 공개적으로 토론해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취지다. 다수결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소수파에 대한 배려적 조치다.

그런데 쟁점 법안뿐 아니라 여야가 합의한 법안까지 필리버스터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다수 의석의 여당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 될 수 없다. 무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한다면 69일 동안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상임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쁜 관행의 고착화다. 지난 6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 청문회를 두고 여야간 증인 채택에 합의하지 못해 증인 없는 청문회가 진행되었다. 2000년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된 이후 최초의 사태다. 문제는 이후 9월에 열린 최교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모두에서 증인 채택 없이 청문회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후보자 검증을 위해 증인을 채택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익숙해지면 청문회의 검증이 부실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상임위원회는 국회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다. 본회의는 모든 국회의원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토론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소수 의원들로 구성된 상임위를 통해 심도 깊은 논의를 기대한다. 그 취지에 따라 상임위의 결정은 표결 대신 모든 위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만장일치가 관행이다.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가 상임위의 관례인 것이다.

그런데 점차 상임위 의결에서 정당 간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채 다수결 표결 방식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법제사법위원회의 회의 운영은 선출된 국민 대표들의 회의체라고 보기 어렵다. 통상 3선 의원이 맡는 상임위원장직을 6선의 추미애 의원이 맡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법사위를 일방적인 여당 주도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반영일 것이다.

추 위원장은 각 교섭단체들이 간사를 추천하면 호선방식을 통해 원안대로 선임하는 관례를 벗어나 무기명 표결에 부쳐 나경원 의원의 간사 선임을 부결시켰다. 국회 역사상 처음 있는 사례다. 위원회에서 소속 정당 위원들의 의견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는 간사를 선임하는데 관행과 다르게 표결처리 하는 것은 다른 정당이 간여하는 행위로 상호존중의 원칙에 위배 되는 것이다.

국정감사 충실히 수행될지 우려

상임위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해야 할 의무가 있음은 국회법에 명시되어 있다. 상임위원회 중 가장 우선하는 법사위가 정청래 위원장 시절부터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상임위에서 정당간 충돌을 하면 다른 상임위로 갈등이 전파되어 전체 상임위가 파행에 접어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0월 13일부터 3주간 진행되는 국정감사가 충실하게 수행될지 우려된다. 현재의 정국상황은 국민의힘에 대한 내란정당 비난과 야당에 대한 정치탄압이라는 정치 프레임이 중심이다. 더욱이 양당 모두에서 강성 지지 집단에 소구하는 강경파 의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국정감사에서는 정당 간 정치경쟁이 아니라 여야의원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행정부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서강대학교 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