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선언’ 이 대통령, 북미대화 무드 조성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 …'엔드 이니셔티브' 제시
“북미-국제사회와 관계 정상화 노력 적극 지지”
트럼프 출범 후 위기맞은 ‘다자주의’ 강조 눈길
북미간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임했던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 특히 ‘E.N.D(엔드) 이니셔티브’ 한반도 평화 구상을 처음으로 꺼내든 이 대통령은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엔드 이니셔티브 구상’을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엔드 이니셔티브’는 이 대통령이 앞서 제시한 바 있는 ‘중단-축소-폐기’ 한반도 비핵화 3단계 구상과 병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의 노력 역시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면서 북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다음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찾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의 APEC 참석이 예상되면서 경주에선 어느 때보다 큰 외교의 장이 열릴 전망이다. 여기에 북미 대화의 흐름까지 추가된다면 경주 APEC은 한반도 평화의 새 장을 여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냐는 문제제기가 보수층과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비핵화를 마지막에 둔 것은 사실상 종전선언을 비핵화 이전에 먼저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라면서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채 교류와 정상화를 먼저 추진한다면 결국 분단 고착화와 통일 불가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다자주의적 협력’을 연설에서 강조한 점도 눈에 띈다.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자국 우선주의’가 새로운 상식처럼 통용되면서 다자주의의 위기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미국에게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언급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같은 문제를 겪는 모든 국가가 이곳 유엔에 모여 함께 머리를 맞대는 ‘다자주의적 협력’을 이어나갈 때 우리 모두 평화와 번영의 밝은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원 한양대 겸임교수는 “다자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압도하는 요즘 (다자주의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는 유엔에서 다자주의적 협력을 언급한 것은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불법계엄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한 ‘민주 대한민국의 귀환’을 국제사회에 알리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난 겨울, 내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뤄낸 ‘빛의 혁명’은 유엔 정신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역사적 현장이었다”면서 “대한민국이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민주주의의 저력은 대한민국의 것인 동시에 전세계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함께 할 모든 이들에게 ‘빛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