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계 반발 여전…장기 연체채권 매각 참여 불투명
협약 체결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 동참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중도상환수수료’ 대법 판결에도 불만 … “이럴 거면 대부업 없애라”
정부가 장기 연체채권에 대해 소각 등 채무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부업체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대부업계에서는 보유한 연체채권을 정부가 정한 가격에 넘기면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다른 금융업권과 비교해 강한 규제와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당근은 제시하지 않고 채찍만 휘두른다는 불만이 크다. 최근 대법원이 중도상환수수료를 이자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하면서 대부업만 제외시킨 것과 관련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문제제기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내달 1일 배드뱅크 출범을 위한 연체채권 매입 협약식을 연다. 금융업권 전체가 참여하고 한국대부금융협회도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대부금융협회가 협약을 체결한다고 해도 강제력이 있는 게 아닌 만큼, 실제 대부업체들의 참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말을 강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고 안 먹고는 말 마음”이라며 “금융회사에서 부실이 발생한 채권을 사왔는데 헐값에 넘기기로 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누가 넘기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금융기관에서 연체채권을 일괄매입하면서 평균 매입가율(채권 장부가액 대비 실제 매입 가격 비율)을 5%로 제시했다. 대부업체들의 연체채권 매입가율은 25% 안팎이어서 매각을 하게 되면 손실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연체채권 규모를 16조4000억원, 대상자를 113만4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절반 이상을 캠코가 보유하고 있으며, 단일 금융업권 중에서는 대부업체의 연체채권 보유 규모가 약 2조원으로 가장 많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에게서 사온 부실채권은 여기서는 정상 채권으로 분류하는데, 정상 채권을 그렇게 사면 되겠느냐”며 “아무리 어려운 사람들 채권이 여기 있다고 해도 문제를 복지와 재정으로 풀어야지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저신용자는 15%가 넘는 금리를 내고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서민 금융이냐.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 영역 같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 대부업체들이 오해를 받는 것도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 대통령은 햇살론 등 정책서민금융의 금리를 언급한 것인데 여당에서는 법정 최고금리를 더 낮추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이후 대부업체들은 신규 신용대출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조달금리가 높아 실적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 부동산담보대출로 영업 방향을 틀었다. 부동산담보대출 평균금리는 연 13.8%다. 법정 최고금리가 더 낮아지면 대부업 시장 자체가 살아남기 어렵다. 대부업계에서 “이럴 거면 대부업을 없애라”는 과격한 발언이 나오는 이유다.
대부업 시장이 줄어들면서 불법사금융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밀려난 서민들이 법정 최고금리 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불법사채업자들에게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금감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상담 건수는 지난 8월 기준 1907건으로 전월(1629건) 대비 19% 증가했다. 상반기 월평균(1369건)과 비교하면 39.3% 증가했다.
전문가들을 정부가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한 단속·처벌만 강조해서는 불법사금융 확산을 막기 어렵다며 시장에서 자금 공급 확대를 위한 대부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정부의 불법 사금융 근절 대책은 저신용·저소득층의 금융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부업 규제를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민들이 합법적으로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대부금융협회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8일 대출금의 ‘중도상환 수수료’에 대해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지만 대부업을 예외로 한 것과 관련해 업계 의견을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대법원이 대부업법 적용 사안에서 중도상환수수료가 대부업법 제8조 제2항의 간주이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며 “대부업법은 입법 목적과 적용 대상,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관한 규정의 존재 여부, 중도상환수수료의 활용 양상과 빈도, 중도상환수수료의 규제 필요성, 법령상 최고이자율 범위, 위반행위에 대한 법정형의 범위 등 여러 측면에서 이자제한법과 구별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해당 판례가 이자제한법과 구별되는 대부업법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므로 이자제한법이 적용되는 이번 사건에 당연히 원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는 법무법인 등을 통해 법률 검토를 벌인 후 대법원에 ‘대부업도 동일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협회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