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재난’ 국가 전산망 먹통 사태

2025-09-29 00:00:00 게재

두차례 재난 겪고도 이중화 안 해

96개 서비스 복구시기도 못 밝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정부 전산망이 멈춘 지 사흘째이지만 복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29일 오전 9시 기준 복구율이 7%에 그쳤다. 9시부터 공공기관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주말 사이 드러나지 않았던 민원이 쏟아져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전산망 마비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출입구에 모바일 출입증 사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9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지자체 민원실에는 주민등록 등본 등을 발급받으려는 시민들이 긴 줄을 섰다. 정부24 사이트와 무인민원발급기가 멈춘 탓이다. 부동산종합공부시스템이 멈추면서 부동산 거래나 임대차계약신고 절차도 대면으로 해야 해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보건복지부가 운영 중인 화장장 예약시스템 마비로 전국 화장장 전화는 이미 폭주상태다. 각종 심사에 필요한 서류 발급이 어려워진 탓에 대출 업무를 하는 시중은행 창구도 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생계급여와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을 신청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 복지로 사이트도 접속이 되지 않아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국민 불편이 이어지고 있지만 복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에 따르면 29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운영이 중단된 전체 647개 전산 서비스 가운데 겨우 47개가 복구됐다.

더 심각한 건 정부가 이번 화재로 시스템에 물리적 피해를 본 96개 서비스에 대해서는 복구 시기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96개 서비스 기능을 모두 대구센터로 이관해 복구를 시도할 계획이다. 다만 아직 96개 서비스 목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29일 오전 중대본 회의에서 “전소된 전산실의 96개 시스템은 바로 재가동이 쉽지 않다”며 “대구센터로 이전·복구를 추진해 최대한 신속하게 대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가 전산망 이중화 장치 부재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부는 2022년 10월 ‘카카오톡 먹통’(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 2023년 11월 행정 전산망 마비를 겪으면서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이중화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말뿐이었다. 중대 재난을 겪은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예산편성 등 후속 조치에 안이했던 탓이다.

한편 이번 사태가 확산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직접 2시간 40분 가량 중대본회의를 주재하며 사태를 챙기고 나섰다. 대통령실에선 같은 날 오전 중에도 관련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송구하다”는 공식사과로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이어 △국민 불편 최소화 △대처 현황 투명 공개 및 민간과 협력 △재발 방지 위한 근본적 대응책 마련 등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2023년 전산망 장애 등을 언급하며 “2년이 지나도록 핵심 국가 전산망 보호를 게을리해 막심한 장애를 초래한 것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처 보고를 받으면서는 담당 부처 책임자들이 관련 규정과 운영원칙을 제대로 답하지 못하자 “지도도 없이 운전해 온 것”이라며 규정 및 지침의 완비와 제대로 된 운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화재가 국가 행정망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중장기 해결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겠다”며 “원점에서부터 기초부터 철저히 점검하고 조사해달라”고 지시했다.

김신일·김형선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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