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과학발전에 대응할 철학적 대안

2025-09-30 13:00:01 게재

일요일 아침, 평소처럼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등산을 하는데 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놔두면 야생동물들의 몫이긴 하지만 등산로 한가운데 떨어진 굵은 밤만 주웠다. 군밤을 먹고 싶지만 굽는 재주가 없어 냄비에 삶은 밤을 안주삼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계절의 순환도 정말 빠르게 느껴진다.

필자로선 올해 한 가지 억울한 게 있다. 산딸기를 제철에 따먹지 못한 것이다. 2월부터 내 팔자에 없는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라 생각할 게 많았다. 그렇다 해도 등산길 양옆에 흔한 산딸기가 며칠동안 안 보였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계절이 옛날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봄에 차례대로 피던 꽃이 한꺼번에 피는 것도 평생에 처음보는 일이거니와,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걸쳐 이렇게 하루걸러 비가 오는 것도 처음 본다. 기후변화 탓인가. 백년수명의 인간이 기후변화 운운하는 것이 우습긴하다.

기후변화도 그렇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다. 필자는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게임의 룰이 자꾸만 바뀌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는 것도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큰 원인일 것이다. 옛날 같으면 노년이라고 해야 할 나이임에도 중장년 같은 느낌으로 사는 것도 육체적인 노쇠가 이전세대보다 늦게 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결코 환영할 일로 생각되지 않는다. 게임이 끝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경기시간이 연장되니 기쁘기보다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인류역사에서 보기 드문 근본적 변화 시기

의료기술의 발전 덕분에 예전에는 암에 걸리면 죽는 것으로 알았지만 요즘은 암에 걸려도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바이러스에 약이 없다고 했는데 요즘은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예방하기도 하고 치료도 한다. 육체적 여건의 변화뿐이 아니다.

사회환경의 변화도 정신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정치의 변화가 크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회변화의 결과일 뿐이다. 베이비붐 세대에 속해 급성장하는 한국에서 자라난 필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변화일까.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인류역사에서 보기 드문 근본적 변화의 시기다. 우선 눈에 잘 보이는 것은 기술의 변화다. 온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인터넷, 예전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대용량의 반도체, 그리고 그에 따라 가능하게 된 인공지능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기술변화는 사회와 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변화는 현대과학의 진전으로 인한 인식의 변화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먼 우주 저편을 상상이나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우주망원경을 통해 눈으로 바라보고, 무의 상태와 유의 상태를 확률적으로 왕래하는 소립자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경지에 이른 인류의 인식은 기성종교와 철학을 포함하는 기존의 사고체계를 심하게 흔들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새로운 단계에 도달한 과학적 인식이 미증유의 기술발전을 가져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과학적 인식은 인간의 삶의 문제와 사회문제 해결에 대해 답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잘못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사회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정당화하거나, 신분사회를 동물사회와 견주어 정당화하는 이론들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당연한 비판이다. 과학적 인식을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기성종교나 오래된 철학에는 과학의 발전을 앞선 생각도 있다. 분자를 예측한 ‘원자론’이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근대과학과 달리 현대과학은 우주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유한하다고 본다. 기독교에서는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한다. 근대과학과 달리 현대과학에서는 무와 유가 서로 전환된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무와 유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정신세계 밝혀줄 등대 필요해

기성종교나 철학이 과학적 인식의 진전으로 인해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대안은 분명치 않다.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했다. 맞는 말이다. 물질의 개벽은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물질이 개벽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신을 어떻게 개벽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만 가지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있다. 답을 찾았다고 나서는 사람은 자칭 재림예수 만큼이나 많지만 과학적 인식처럼 설득력 있는 철학적 대안은 아직 없어 보인다.

암흑 속에서 불안하게 항해하는 인류의 정신세계를 밝혀줄 등대가 필요하다. 한국은 경제선진국이 되었고 문화선진국이 되었다. 흔들리는 세계를 이끌 사상의 선진국도 될 수 있을까.

카이스트 교수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