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32

인천 옹진군 덕적도 운주봉길

2025-10-10 13:00:01 게재

국내 거주 외국인들 ‘가고 싶었던 섬’ 1위

백제 침략 때 당나라 군대의 전진기지였던 섬, 덕적도.

660년, 수륙 13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백제 침략에 나선 소정방의 당나라군은 4개월간 덕적도를 주둔지 겸 군수품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지금은 다리로 연결된 덕적도 바로 옆 소야도에는 당나라군의 진지로 추정되는 유적들이 남아있다. 당나라 침략자들은 덕적군도(群島)에 주둔했다가 금강 하구 기벌포로 상륙해 신라와 협공으로 백제를 멸망시켰다.

덕적도 서포리 앞 바다 풍경. 작은 무인도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인천 옹진군에 속한 덕적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영토였으나 한강 유역의 다른 지역처럼 신라와 고구려에 번갈아 점령당했던 경계의 땅이었다.

덕적도는 고대부터 국제 무역 상인과 사신들이 오가던 황해 횡단항로의 길목이기도 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는 사람의 거주가 금지된 공도(空島)였다. 다시 사람의 거주가 허락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다.

수려한 경관으로도 이름 높았다.

“덕적도는 매년 봄과 여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산에 가득 피어 골과 구렁 사이가 붉은 비단 같다. 바닷가는 모두 흰 모래밭이고 가끔 해당화가 모래를 뚫고 올라와 빨갛게 핀다. 비록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라도 참으로 선경이다. 주민들은 모두 고기를 잡고 해초를 뜯어 부유한 자가 많다.” (이중환.택리지(擇里志))

덕적도는 덕물도, 득물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면적 20.87㎢, 서울 여의도의 4.5배쯤 된다.

과거 덕적도는 연평도와 함께 대표적인 어업전진기지였다. 그 중심에 북리 마을이 있었다. 연평도 파시만큼은 아니었으나 북리에도 규모가 큰 파시가 섰다. 덕적 바다는 민어 산란장이었다. 6~7월 민어철이면 덕적도 북리항에는 수백척 어선들이 몰려들고 색시집도 수십 곳 생겼다.

민어는 가을이면 제주도 근해로 남하해 월동하고, 봄부터는 임자도, 덕적도 등 북쪽 어장으로 돌아와 산란했다. 민어는 ‘동국여지승람’에 특산물로 거론될 정도로 덕적도 바다의 대표적 어종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민어들도 덕적 바다로 돌아오지 않는다. 파시의 흔적은 북리 일부와 그를 기념하는 덕적도항의 민어잡이 어부상으로만 남았다.

덕적도에는 백섬백길 84코스인 운주봉 길이 있다. 운주봉길은 마을과 해변, 산과 갯벌과 백사장으로 이어지는 섬길이다. 덕적도항을 출발해 진리 마을 호박회관을 지나 망재와 운주봉(231m)을 넘고 벗개 방조제를 지나 서포리까지 이어지는 8.5㎞의 트레일이다.

운주봉 정상에 오르면 덕적도 인근 바다에 선경처럼 펼쳐지는 섬들이 장관을 이룬다. 길의 끝 서포리에는 드넓은 모래 해변과 섬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육송 소나무 숲이 있다. 솔숲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든다.

덕적도는 한때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섬 1위에 꼽힌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아름다운 서포리 해변과 솔숲 때문이었다. 한 시절 수도권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쇠락해 관광 유흥 시설로 쓰던 여러 건물들이 폐허로 남아있다. 그 때문에 더욱 아련하고 진한 감성이 묻어나는 섬이기도 하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