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 지자체 16% 그쳐…부실 검증 우려
광역자치단체 12곳, 기초자치단체 28곳 조례에 명시 … 203곳은 자체 감사
국고·지방 보조금 사업은 법률로 ‘회계검증’ 규정 … 민간위탁사업은 빠져
개정법률안 국회 계류 중 … ‘어린이집도 대상’, ‘세무사도 검사’ 사실과 달라
지방자치단체들이 민간위탁사업에 지출하는 예산이 한해 14조원에 육박하지만 회계감사를 하는 지자체는 16%에 그친 것으로 확인돼 부실 검증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고보조금이나 지방보조금은 일정 금액 이상 사업에 대해 회계법인의 회계검증을 받도록 법률에 규정돼 있지만, 사실상 동일하게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는 민간위탁사업은 법률에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회계검증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13일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 등에 따르면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회계감사 의무를 조례로 명시한 지자체는 전체 243개 중 40곳(16%)에 불과했다. 전체 민간위탁 예산금액 13조8800억원 중 24%인 3조3200억원 가량만 회계감사 대상이다. 203개 지자체에서 집행하는 10조5600억원은 회계검증을 받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2023회계연도 9423억원의 민간위탁사업 예산을 집행했다. 주요 민간위탁사업은 쓰레기 소각장, 체육시설, 물재생시설, 사회복지시설, 청소년 수련시설 등이다. 광역자치단체 17개 중 서울시를 비롯한 12곳이 회계감사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경남 전북 대전 울산 세종 등 5곳은 회계감사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226개 중 28곳만 회계감사를 의무화했다.
◆여야 모두 개정안 발의, 세무사 반발에 결론 못 내려 = 국회에는 민간위탁사업의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과 행정안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신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위탁 관련 비용을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으나, 그 사업과 관련한 결산에 대한 감사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이로 인해 예산 집행에 관한 관리 부실 문제와 함께 일관성 결여에 따른 규제 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도 “민간위탁사무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법에 아무런 회계감사 규정이 없어, 지방자치단체별 제도 차이로 인한 규제 형평성 및 예산관리 부실로 인한 회계부정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여야 의원이 같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개정안은 신속하게 상정돼 지난 8월 26일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논의됐다. 하지만 세무사들의 반대 의견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시 어린이집 등 소규모 민간위탁사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세무사도 참여하는 결산서 검사(간이한 검사)도 시행되고 있다는 등의 잘못된 사실관계가 알려지면서 논의가 보류됐고, 행정안전부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실태조사에 나섰다.
◆어린이집은 개정안에 따른 회계감사 대상 아냐 = 어린이집이 개정안에 따른 회계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법규정을 잘못 이해한 측면이 크다.개정안은 소규모 민간위탁사업에 대해 조례 또는 시행령으로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지자체가 자체 감독 여력과 예산 사정, 위탁사무의 규모·성격 등을 고려해 판단하게 된다.
현재 회계감사를 의무화한 지자체들도 감사대상 기준은 각기 다르다. 서울 광주 강원 경북 전남은 전체 민간위탁사업을 대상으로 한 반면, 제주 인천 부산 경기 대구 충북은 10억원 이상 사업에 대해서만 대상으로 했다. 충남은 5억원 이상 사업이 대상이다.
또 현재 모든 국공립 또는 민간 어린이집은 민간 위탁금을 받지 않아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회계감사 대상이 될 수 없다. 공립 또는 민간 어린이집은 국고(지방)보조금으로 운영되며, 이미 보조금법에 따라 해당 사업의 사업비 집행내역에 대해 회계법인으로부터 회계검증을 받고 있다. 지자체 직영 직장어린이집만 민간위탁사업의 대상이고 회계감사는 어린이집이 아닌 수탁기관의 위탁사업비 집행내역에 대해 진행된다.
서울시의 경우 한솔어린이보육재단, 킨더슐레교육재단, 아동보육복지협회 등이 회계감사 대상이다.
◆‘세무사 결산검사 시행’ 허위 사실 = 세무사들이 민간위탁사업의 결산서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도 잘못 알려진 허위 사실이다. 일부 지방의회에서 회계감사를 세무사도 참여할 수 있도록 '민간위탁사업 결산서 검사'로 변경하는 조례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논의가 보류된 상태다.
민간위탁사업에 투입된 예산에 대한 검증을 엄격한 회계감사가 아닌 간이한 검사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회계투명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서울시의회도 회계감사를 간이한 검사로 변경하는 조례를 마련했다가 간이한 검사를 삭제하고 회계감사로 원상 복원했다. 세무사는 납세자를 위한 세무대리(조세 신고 등 대리)를 수행하는 자격사로 회계검증 업무 수행의 법적 권한이 없고, 업무 수행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간이한 검사는 법률상 근거가 없고,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따라서 실질적 업무방법과 절차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일각에서 언급하고 있는 민간위탁사업 회계감사에 세무사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마련되기 어렵다. 개정안의 취지는 회계투명성 제고와 지자체 예산의 부정수급 원천 방지, 지자체 예산지원 사업에 대한 감독체계의 일관성 확보에 있는데 민간위탁사업 예산 집행의 인증업무를 간이한 검사까지 허용하는 것은 법개정 취지와 양립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10월 국정감사를 진행하고 11월 중순 이후 법안 심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도 그때 다시 논의될 전망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행안위 의원들도 엄격한 검증을 위해 회계감사로 가는 방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며 “국고보조금·지방보조금, 기부금을 받는 공익법인 등 국가와 민간 영역 전반에서 회계감사를 받도록 제도적 정비가 이뤄졌지만, 민간위탁사업만 빠져있는 상황이고 전체적인 틀에서 같은 체계로 정비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