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석 칼럼

APEC을 에너지 안보 협력의 계기로

2025-10-22 13:00:01 게재

오늘날의 세계를 한두마디로 압축하면 탈세계화와 탈화석연료로 상징할 수 있습니다. 탈화석연료를 의미하는 에너지 전환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주력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태양광과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기술만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발전소를 통해 생산된 전기를 전기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변압기와 차단기 등으로 이루어진 전력망 확충이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풍력터빈 등 발전기 제조에 필수적 소재인 희토류 확보 그리고 스마트한 전력 수요관리를 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는 전통적인 석유·가스의 안정적 공급을 넘어서 전력망 확충, 희소광물 자원 확보, 그리고 디지털 수요관리를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에너지 안보의 시대입니다. 이제 에너지 안보가 확보되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에너지 안보는 중동의 정치 정세나 해상 수송로의 안전 확보 그리고 석유의 전략적 비축, 천연가스 공급선 다변화 등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최근 보고서에서 에너지 안보의 범위가 전력망, 핵심 광물, 그리고 디지털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새로운 에너지 안보의 시대 도래

먼저 수요 측면에서 보면 전세계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4년 전력수요는 전년 대비 4.3% 증가했습니다. 이는 지난 10년간 평균 증가율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2024년은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였습니다. 도시마다 40℃를 넘는 날이 이어지면서 냉방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피크가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는 새로운 전기 폭식자가 되고 있습니다. 교통 부문에서는 전기차가, 난방 부문에서는 전기 히트펌프가 범용화되고 있으며 엔진을 대신해 전기가 기계를 구동하는 전동화의 추세도 이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세가 된 전기화 시대는 에너지 안보를 뒤흔드는 새로운 변수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공급측면을 살펴보면 우선 재생 에너지의 확대는 전력망이라는 병목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신규 재생에너지의 70%가 그리드 연결 지연으로 대기 상태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IEA 역시 계통 투자가 현재의 두 배 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결국 송전망이 에너지 안보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핵심 광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배터리와 전기차 풍력터빈 송전망에는 리튬 니켈 구리 희토류가 필수적입니다. 리튬의 경우 정제의 70% 이상이 특정 국가에서 이루어집니다. 희토류는 이보다 더 심각합니다. 채굴과 정제 모두 중국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원지정학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한 것입니다.

전통적인 에너지 안보 역시 불안합니다. 석유 수요도 아직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정학적 갈등 심화, 해상 운송로 차단, 보험료 상승 같은 요인은 언제든지 유가를 급등시킬 수 있습니다.

천연가스 아시아 수요는 정체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발전용 천연가스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가격 변동성과 계약 구조의 경직성에 따른 위험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공급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너진 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에너지 안보의 시대로 들어선 것입니다.

전환이 빠를수록 안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안보 없는 전환은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전환과 안보는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시대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새롭게 출범한 기후환경에너지부가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을 이겨내고 두 개의 정책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기후환경에너지부의 정책 목표 달성 기대

또 하나의 어려움은 에너지 안보는 국가와 국가를 뛰어넘는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전세계의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의 문제가 에너지 안보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탈세계화의 시대는 각국이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고 이러한 자국 이기주의는 에너지 안보의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주, 대한민국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이러한 국가 간 역내 협력을 가시적으로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HD 현대 커뮤니케이션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