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국가데이터처가 이름 값 하려면

2025-11-10 13:00:07 게재

이재명정부의 조직개편으로 경사가 난 기관으로 국가데이터처가 꼽힌다. 10월 1일 기획재정부 산하 ‘외청’에서 국무총리실 소속 ‘처’로 격상됐다. 기관장도 기재부 출신이 주로 내려오던 데서 벗어나 첫 통계청 출신 청장이 초대 처장으로 부임했다.

국가데이터처는 총리의 지휘·감독 권한을 토대로 국가통계의 총괄·조정은 물론 부처별로 흩어진 공공·민간 데이터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다. 공공 데이터는 행정안전부, 개인정보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민간 데이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따로 관리해온 칸막이를 없애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데이터 생산 및 관리를 맡는다.

그러면 이제 정치권발 외풍에 흔들렸던 국가통계 시스템이 굳건해질까. 데이터 간 연계·활용이 보다 활발해지고, 국민 생활과 의식 변화를 반영하는 다양한 통계를 생산해낼까. 과거 정부 사례를 되새겨보면 우려를 놓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2년, 통계청은 소득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조사대상 표본을 늘리고 고소득층 소득을 반영한 새 지니계수를 공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새 지니계수 상 소득 불평등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나자 발표를 미뤘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국가통계의 대통령실(옛 청와대)과 기재부 사전 보고를 금지하는 내용의 통계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래도 통계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진전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격차가 10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당시 황수경 통계청장이 경질되고 가계소득 조사방식이 그전과 비교하기 어렵게 바뀌었다.

통계의 독립성·중립성 담보 장치 필요

국가통계 생산조직 확대개편만으로 통계 작성 및 공표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우선 정권이 입맛에 맞는 통계를 먼저 챙겨보고 싶어 하는 유혹을 떨쳐야 한다. 세계 표준에 맞춰 정상적으로 이뤄진 조사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정책 수립에 반영해야 마땅하다. 선진국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 못지않게 통계청의 독립성을 중시하며 통계청장 임기를 보장한다.

국가데이터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정무직이다. 선진국처럼 임기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통계 외풍은 대통령실이나 상급 기관에서 불어오므로 법과 제도만큼 사람이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국가데이터처는 범정부 데이터 거버넌스를 총괄하는 기능을 맡는다. 국가통계의 단순 관리를 넘어 부처 간 데이터를 연계·융합하는 플랫폼을 개발해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데이터는 AI 시대 핵심 자원이다. 급속 확산하는 생성형 AI 기술의 기반인 학습용 데이터 공급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들이 보유한 공공 데이터의 생산자이자 주인은 국민이다. 국가데이터처는 공공기관들이 데이터를 자기 것인 양 움켜쥐지 않고, 개방 공유 협력함으로써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데이터 민주화’가 이뤄져야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비즈니스 및 연구에 활용하는 데이터 생태계가 확장하고, 데이터경제도 구현된다.

통계청은 1948년 공보처 통계국으로 출발해 1961년 경제기획원 산하로 이관됐다. 1990년 1급 ‘청’에 이어 2005년 차관급으로 올라섰다. 그래도 기재부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번에 독립기구로 확대 개편됐다. 정부기구 설립 77년 만에 명칭에서 ‘통계’가 사라지고 ‘데이터’가 들어왔다.

국가데이터처는 출범과 함께 ‘국민이 믿을 수 있고, 쉽게 쓸 수 있는 데이터 제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과거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통계청 본연의 업무인 지니계수 가계소득 고용통계부터 보다 현실에 맞게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 20대 ‘쉬었음’ 인구가 급증하면서 실업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가 지난주 나왔다.

한주에 몇건 거래되지 않는 아파트 가격을 토대로 매주 발표되는 집값 통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이참에 한국부동산원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주택가격동향조사 대상 표본과 발표 주기 등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용자친화적인 데이터서비스 모색할 때

올해로 100년을 맞은 인구주택총조사는 국가데이터처의 존재 의미를 재평가할 가늠자가 될 것이다. 10월 22일~11월 18일 진행되는 이번 센서스에 예산 1146억원이 들어간다. 센서스를 맞춤형 정책을 마련하는데 적극 활용해야지 조사결과 발표에 의의를 두어선 안된다.

오는 2027년 부산에서 제66차 세계통계대회가 열린다. 한국은 2001년 제53차 서울대회에 이어 26년 만에 다시 개최한다. 세계 3000여명 통계인들이 참여하는 ‘통계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손색이 없는 데이터 혁신과 이용자친화적인 데이터 서비스 방안을 모색할 때다.

가천대 겸임교수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