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칼럼
과학기술을 방송통신으로부터 떼어내라
‘양자역학’이라는 단어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튀어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문제의 발언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난 10월 20일에 나왔다. 국회 과방위 위원장은 “문과 출신인 제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거의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라고 말했다. 과방위 위원장의 얘기는 개인적인 문제가 정치적인 쟁점이 되는 가운데 나왔다. “양자역학 때문에”라는 처신을 잘못했다는 그의 독특한 논리 전개에 사람들은 ‘양자역학이 의문의 1패를 당했다’라고 빈정거렸다.
올해는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가 양자역학의 행렬역학 표현을 발견한 100주년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영감을 떠올린 독일 헬골란트 섬에서는 지난 6월 관련 국제학회도 열렸다. 그런 뒤 우리는 양자역학은 잊었고 연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양자역학의 1패 사건이 발생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문과 출신…” 어쩌구 하는 그의 말에 필자도 공감한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문과 출신이고, 뒤늦게 양자역학 책에 코 박고 읽은 경험이 있기에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그가 누구에게 양자역학 과외지도를 받는지 모르나 벼락치기로 소화하기 쉽지 않은 공부다. 물론 신세계를 탐험한다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에게 이건 얘기하고 싶다. 다른 건 몰라도 양자역학의 ‘양자'라는 말뜻은 이번 기회에 정확히 알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거다. 내 주변을 보면 양자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을 내내 보고도 “'양자' 뜻이 뭐야”라고 물으면 잘 설명하지 못한다. 그건 좀 아닌 거 같았다.
양자역학 공부에 잠못이룬 과방위 위원장
'양자(quantum)'는 에너지와 같은 일부 물리량의 최소 단위를 가리킨다. 최소단위라는 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덩어리를 말한다. 예컨대 빛 에너지는 최소 단위(1양자)의 배수로만 존재한다. 배수가 아닌 빛 에너지는 자연에 없다.
다시 말하면 1양자, 2양자, 3양자는 있으나, 1.4양자, 1.5양자처럼 중간값은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화되는 물리량에는 스핀 각운동량 전하 자기모멘트 등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이 연속적인 세계인 줄 알았으나 일부는 불연속적인 양의 세계라는 게 알려졌고, 이걸 알아낸 게 양자역학의 출발점이다.(참고로 시간 길이 질량이란 물리량은 양자화되어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연속적인 양이라는 거다).
그리고 이 일을 해낸 사람이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1858~1947)다. 플랑크는 온도에 따라 발광체가 다르게 내놓는 빛의 스펙트럼(파장별 세기 분포)을 정확히 표현하는 방정식을 찾아냈다. 이때 빛 에너지 크기가 불연속이라고 해야 방정식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걸 확인한 거다. 그는 이후 베를린대학교 총장, 카이저 빌헬름 협회 회장으로 일했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초과학 종합연구시설인 막스플랑크협회(MPG)에 들어가 있다. 막스플랑크 협회 산하에는 80개가 넘는 기초과학 연구소가 독일 전국에 있다. 예를 들면 뮌헨 인근에는 ‘막스플랑크 물리학 연구소’가, 프랑크푸르트에는 막스플랑크생물물리학연구소, 보흠에는 막스플랑크보안 및 정보보호연구소가 있다. 보흠 연구소의 단장 중 한명이 한국인 차미형 박사(전 KAIST교수)다.
개인적으로 독일 여행을 갔을 때 막스 플랑크의 동상이 베를린 훔볼트 대학 정문 인근 작은 공원에 있는 걸 봤다. 위대한 과학자 동상인데 작고 볼품없어 놀랐다. 초라하고 늙고 지친 모습이었다. 그는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전신인 카이저빌헬름연구소를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한 바 있다. 그러나 히틀러 치하에서는 고심해야 했다. 히틀러를 찾아가 유대인 과학자 추방에 반대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얘기된다. 필자는 베를린 서쪽 외곽에 있는 그뤼네발트 숲에도 가봤다. 그곳에서 플랑크는 어린 아들과 걸으며 “아빠가 뉴턴에 버금가는 중요한 발견(양자역학)을 한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필자 같은 사람은 과학이 재밌어서 양자 역학책을 보지만 일 삼아서 보려면 고생일 거다. 업무 때문에 뒤늦게 양자역학 공부하는 정치인에게 격려를 보낼 만하나, 그럼에도 애당초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현대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문과 출신이 ‘과학기술'로 시작하는 상임위 리더라니 그게 되겠는가?
‘과학기술’을 ‘언론'과 묶은 건 과학 경시
무엇보다 왜 과학기술이 국회 상임위 체계에서 '언론'('방송 통신’)과 묶여 있느냐고 묻고 싶다. 과학기술 경쟁력이 이토록 중요한 시대에 독립적인 상임위원회로 자리잡지 못한 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과학 경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미국 하원의 과학 관련 상임위원회를 찾아보니 ‘과학, 우주, 기술 위원회’이고, '정보 통신’과 분리되어 있다. ‘양자’를 ‘언론인’ 출신의 손안에서 놓아 줘야 한다. 그래야 “양자역학 공부하느라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인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