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기술패권시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세계질서가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도 실상은 국가의 미래와 산업의 생존을 놓고 겨루는 기술전쟁이다. 기술이 곧 국가안보로 귀결된다. 그래서 경제와 외교, 안보와 산업이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누가 알고리즘을 만들고, 설계하며, 소재와 장비를 연구개발하는가.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핵심요소가 사람, 과학기술 인재다. 인재를 확보한 국가가 미래를 갖게 된다. 대한민국을 이끌 미래 인재는 준비되고 있는가?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일찍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기반으로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였다. 그 힘으로 인공지능(AI)·반도체·우주·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선점했다.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의료 금융 컨설팅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를 발굴해 영주권을 부여한다. 그 기본원칙은 지금도 변함없다.
MIT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미국의 이민정책은 “기술 우위는 곧 인재 우위이며, 인재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기술패권경쟁에서 생존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중국은 1970년대 개혁개방 이후 세계 자유무역 질서(WTO)에 편입되면서 기회를 잡았다. 미국 실리콘벨리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중국계 과학기술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천인계획'이다. 2008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과학자까지 파격적 지원으로 영입한 정책이다. 그 결과 IT 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이 기술경쟁력의 핵심이다.
중국을 연구해 온 미국 외교관 데이비드 랭크는 “천인계획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이끈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진단한다. 중국은 세계의 관심을 피해 ‘천인계획’을 종료했다. 하지만 더 은밀하고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초과학부터 응용기술까지 국가적 연구·개발 생태계 완성을 위해서다.
21세기 권력은 군사력보다 기술력
세계적인 기술 블록화 현상은 대세가 되었다. 하버드대의 조지프 나이 국제정치학 교수는 “21세기의 권력은 군사력보다 기술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첨단기술을 가진 국가는 어제의 적이라도 오늘은 국익을 위해 동맹이 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10년간 국가의 경제성장·안보는 기술 인프라와 인재 생태계로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재가 곧 국가의 힘이다. 과학기술이 정치와 경제를 넘어 산업의 존립 기반은 물론 국가안보까지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경쟁을 넘어 전쟁의 단계로 가고 있다.
한국은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처우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정부의 정책과 예산 지원도 단기성과 중심이다. 그 실상은 산업경쟁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정부에서 7단계나 떨어져 27위로 추락했다(IMD, 2025년).
더 비관적인 것은 국가경쟁력이 경제성과, 정부와 기업의 효율성, 인프라 등 모든 분야에서 2030년에는 중국에 추월당한다는 전망이다. 불과 5년 후의 일이다. 더 추락하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할 위기다.
이재명정부는 새해 예산을 ‘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 첫번째 예산’으로 명명하고 10조1000억원을 책정했다. AI 인프라 구축에 7조5000억원을 투입하고 AI 고급 인재 1만1000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동시에 AI 방위산업 문화콘텐츠 분야를 첨단전략산업으로 정하고 연구·개발(R&D)예산으로 35조3000억원을 책정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렇지만 예산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국가 인재전략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없다. 과기정통부·산업부·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제각각이다. 범국가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대학·연구기관·기업의 인재 확보와 육성정책도 혁신적 개혁이 필요하다. 기초과학·공학 중심의 인재양성 체제를 강화하고, 세계 수준 연구자에게 파격적 지원과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대학의 정년 규제 등 경직된 교육제도가 걸림돌이다.
AI·반도체·바이오·양자 등 전략산업은 기업의 힘만으로 어렵다. 정부의 정책과 산업 현장, 교육·연구를 긴밀히 연계하는 ‘연구 생태계’ 조성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더불어서 과학기술 인재가 국가를 지탱하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회적인 인식의 전환도 매우 중요하다.
과학기술 인재의 역량에 국가미래 달려
과학기술이 곧 국가안보 그 자체라는 사실은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서도 증명되었다. 조선, 반도체 등 한국의 첨단 기술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전혀 다른 굴종적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기술패권시대, 인재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경제도, 안보도, 국제경쟁에서도 존립 기반을 잃게 된다. 중국의 ‘천인계획’이 주는 교훈이다.
유럽 일본 인도 중동까지 인재 전쟁에 뛰어들었다. 오늘의 정책은 5년 뒤의 산업지도, 10년 뒤 국가 위상, 20년 후의 생존을 결정한다. 결국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고 모으며 지키는 능력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