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지정 종료 후 감사보수 23.6%↓…감사시간도 줄어
감사시장 출혈경쟁 촉발 … 감사품질 하락 우려 현실화
기업 외부감사 평균 감사보수 2022년 이후 계속 낮아져
주기적 감사인 지정에서 풀린 상장기업들의 감사보수가 23.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감사인을 자유선임하면서 감사보수가 낮아진 것이다.
회계업계에서는 감사보수 하락에 따른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이 같은 사실이 통계로 최근 확인됐다. 2022년부터 외부감사 기업의 평균 감사보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회계법인들의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금융당국은 감사품질 하락을 경고하고 나섰다.
24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사업연도 회계법인 사업보고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들의 평균 감사보수는 4680만원으로 전기(4900만원) 대비 220만원 하락했다. 2022사업연도(4960만원) 이후 하락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금감원은 “감사보수 위주의 수임 경쟁 등의 영향으로 회계법인 전체의 평균 감사보수의 하락세가 지속됐으며 4대 법인도 전기 대비 하락했다”며 “감사인은 충실한 외부감사를 수행하기 위해 감사품질 및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충분한 인력·시간을 투입하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회계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주기적 지정(6년간 외부감사인 자유선임 후 3년간 금융당국이 지정)에서 풀린 이후 벌어진 회계법인들의 치열한 수임 경쟁을 감사보수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주기적 지정에서 벗어난 기업들에 대한 출혈 경쟁이 회계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전체 외부감사 기업의 감사보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회계학회가 발간한 회계저널 10월호에는 ‘주기적 지정제가 감사보수와 감사시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논문(전용석·이유선·전규안)이 게재됐다.
2020년에 첫 번째 주기적 지정으로 선정된 197개 기업을 대상으로 주기적 지정제 도입이 총 감사보수와 감사시간, 시간당 감사보수에 미친 영향을 전체 상장기업과 비교한 것이다.
주기적 지정기업은 지정 첫해인 2020년 평균 감사보수가 4억1406만8000원이었고 2022년(지정 마지막해) 4억7253만3000원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주기적 지정이 풀린 2023년 평균 감사보수는 3억8507만8000원으로 전년 대비 23.6% 감소했다.
전체 상장기업의 평균 감사보수가 2020년 2억2885만9000원에서 2023년 2억8947만4000원으로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2023년 평균 감사보수는 전년(2억8822만3000원) 대비 8.6% 증가했다.
전체 상장기업의 평균 감사시간은 2023년 2674시간으로 전년(2702시간) 대비 6.7% 증가한 반면, 2020년 주기적 지정을 받은 기업들은 2023년 평균 감사시간이 4002시간으로 전년(4172시간) 대비 6.0% 감소했다.
시간당 감사보수도 전체 상장기업은 2023년 평균 10만8500원으로 전년(10만7400원) 대비 3.6% 증가한 반면, 주기적 지정 기업은 2023년 평균 9만3500원으로 전년(11만5800원) 대비 17.5% 급감했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주기적 지정이 종료된 후 자유선임이 된 경우에 총 감사보수는 23.6% 감소했으나 감사시간은 6.0%만 감소한 것은 감사인이 감사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표준감사시간 등을 고려해 감사시간을 적게 감소시켰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하지만 총 감사보수가 계속 하락하는 경우에는 감사인이 감사시간을 동일한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결국 감사시간을 줄이게 돼 감사품질의 하락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시간당 감사보수는 주기적 지정제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기적 지정 기업의 2020년 시간당 감사보수는 11만1400원으로 전년(8만50원) 대비 45.1% 증가했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12만8000원 보다는 13.0% 낮았다.
전 교수는 “이는 주기적 지정기업의 총 감사보수 증가의 주된 이유가 시간당 감사보수의 증가보다는 감사시간의 증가에 기인함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회계법인들의 평균 감사보수 하락폭은 대형 회계법인인 빅4(4.4%)와 중견회계법인이 주축인 등록회계법인(4.2%)이 일반법인(2.1%) 보다 더 컸다. 이는 상장회사 외부감사를 등록회계법인(빅4 포함)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기적 지정제와 관련한 변화가 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한 주기적 지정 감사를 빅4 회계법인만 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제도를 변경한 이후 빅4 중 삼일회계법인과 삼정회계법인의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8.4%, 2.7% 증가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지정 감사를 빅4에 빼앗긴 중견회계법인들의 매출 타격이 상대적으로 컸다”며 “자유선임으로 풀린 주기적 지정기업에 대한 감사보수를 전년 대비 60%로 낮추는 회계법인이 있을 정도로 업계의 출혈 경쟁이 심각한 상황이고 결국 감사품질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주기적 지정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기업의 의견이 많고, 정부가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해 주기적 지정의 완화를 시행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주기적 지정제가 기업에 미친 영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연구 결과는 주기적 지정제 또는 표준감사시간제의 보완 필요성과 기업실무에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