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견 칼럼
지방선거? 바보야, 문제는 환율이야
“환율이 1500원인데 무슨 코스피 5000 타령이냐.” 한 자영업자의 말이다. 그는 “시중에서 달러화를 살 때 1510원을 내야 한다. 주유소 기름값만 오르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소비가 급랭하고 있다. 그나마 낫다는 강남도 밤에 한번 돌아다녀 봐라. 썰렁하다. 성수동 한곳 빼고 싹 죽었다. 이러다가 자영업자들 다 죽는다.”
실제로 주유소 휘발유값은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면서 11월 한달새 5주 연속 급등, 리터당 100원 이상 올랐다. 서울 주유소 휘발유값은 평균 1800원을 돌파했다. 두달 전만 해도 1600원대였다. 외식물가도 본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했고, 식품업계 등도 인상 요인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눈치 보느라 제품값을 올리지 못하고 속앓이 중이다. 누가 총대를 메고 나서면 앞다퉈 올릴 분위기다.
환율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의 관세전쟁 선포로 1500원 턱밑까지 폭등했다가 그후 이재명정권이 출범하면서 1300원대로 진정됐다. 그러던 것이 8월 이후 급등하기 시작해 연일 1500원을 위협하고 있다. 이 기간중 전세계 주요 화폐들 가운데 원화는 가장 많이 값어치가 급락했다.
“시중에 달러화 씨가 말랐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 통화당국은 국내 증시 ‘불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증시로 몰려나간 ‘서학개미’ 탓을 한다. 하지만 연기금 등 기관도 그 못지 않게 미국 주식을 사들인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하나 외국인이 11월 한달 동안에만 유가증권시장에서 월간 역대 최대인 14조4000억원어치 국내 주식을 팔아치운 것도 환율 급등의 주요 요인이 됐다.
역대 최대인 연간 7000억달러대 수출이 예상될 정도의 활황으로 달러화를 잔뜩 갖고 있는 기업들 역시 정부 SOS에도 도통 달러화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시중에 달러화 씨가 말랐다”는 얘기가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한은은 이와 관련, “IMF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고 끊어 말한다. 맞는 말이다. IMF 외환위기 사태 때는 기름을 수입하며 지불해야 할 달러화가 한달치 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사실상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IMF에 굴욕적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외환보유고도 4288억달러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 불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환율 급등, 쉽게 풀어 원화가치 하락은 달러 환산 국내총생산(GDP)이 2년 연속 감소하도록 만드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 IMF는 최근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해 달러화 기준 명목 GDP를 1조8586억달러로 추산했다. 지난해 1조8754억달러보다 168억달러(0.9%) 줄어든 것으로 2년 연속 감소다. 1인당 GDP가 올해 대만에 추월당하는 동시에 2년 연속 감소한다는 것은 이재명정부에게 부담스런 대목이다.
환율 급등은 13조원대 소비쿠폰 살포에도 불구하고 3분기 소상공인 이익을 감소시켰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분기 소상공인 사업장당 평균 매출은 4560만원으로 전 분기보다 1.16% 증가했으나 평균 이익은 1179만원으로 전 분기보다 4.63%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환율 급등에 따른 고물가 등의 영향으로 평균 지출이 3435만원으로 3.22% 늘어난 결과다. 3분기보다 더욱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는 4분기 사정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환율 급등은 ‘자금 이동’이 주요인이다. 하지만 급속한 자금 이동이 왜 일어나고 있는가, 그 이면을 보면 실물경제의 ‘구조 문제’가 깔려 있다. 외국인은 반도체 주식에만 관심이 있다. 지난달 14조4000억원대 투매를 했을 때도 팔아치운 주식의 75%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양대 반도체주다.
앞서 외국인이 순매수로 코스피지수를 끌어올릴 때도 이들 반도체주식을 집중매수했다. 자동차 방산 포탈 주식도 일부 사고 팔았으나 주 관심사는 아니었다. 이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만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난달 월가에서 ‘AI 거품론’이 불거지자 반도체주를 투매한 데서도 볼 수 있듯, 그 ‘신뢰’도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
정부 정책으로 환율이 잡힐지는 미지수
서학개미들이 국내에서 ‘불장’이 형성됐을 때에도 엔비디아 테슬라 등 미국 주식을 계속 사들인 것도 AI, 로봇 등 첨단산업의 헤게모니를 이들 기업이 쥐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조정을 받더라도 본토의 조정폭이 외국인이 주가를 쥐락펴락하는 국내보다 상대적으로 적다고 보고 있는 모양새다.
“바보야, 문제는 환율이야.” 내년 6.3 지방선거와 관련, 요즘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다. 정부 여당도 공감하고 있으나 과연 환율이 잡힐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