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K-컬처와 고조선, 그리고 ‘환빠논쟁’의 함정
프로그램 이름은 ‘정적’이었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메인 스타디움. 정오의 태양 아래 텅 빈 그라운드에 흰색 운동복을 입은 소년이 등장했다. 손에는 굴렁쇠를 들었다. 관중은 영문을 몰랐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삐~’하는 고음이 울려 나왔다. 하프라인을 통과한 소년이 문득 굴렁쇠를 세우고 손을 흔들었다. 관중들은 그제야 박수로 화답했다.
이를 기획한 이어령 당시 문화부장관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떠들썩한 축제의 중심에서 정적을 보여주고 들려주려 했다는 거다.
그는 ‘굴렁쇠 소년’이 고조선부터 돌고 돌며 현재까지 이어온 원형의 역사를 상징한다고 했다. 면면한 한(恨)의 역사 말이다. 한은 슬프지만 비굴하지 않고 아프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의 바탕이라 했다.
쌓인 한의 응어리를 깨뜨리고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 신명이다. 노래와 춤과 놀이를 통해 해한(解恨), 한을 신명으로 풀어낸다고 했다. 한과 신명은 상호보완적 역동성으로 얽혀 있다고 한다. 우리 DNA에 슬픔의 응어리인 한이 서려 있지만 절망에 머물지 않고 폭발적 에너지인 신명으로 승화된다는 거다.
수험생도 연구자도 기피하는 고조선역사
고조선의 홍익인간과 재세이화(在世理化) 이념이 한국인 특유의 조화정신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이처럼 강렬한 슬픔과 폭발적 흥겨움의 공존이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의 바탕이라는 거다.
하지만 오늘날 고조선은 우리 의식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나. 수험생도 외면하고 연구자들도 기피하는 실정 아닌가. 오히려 우리 고대사에 대한 새롭고 깊은 연구는 해외에서 활발하다. 국제학술지 네이처(2021.11)에 우리 언어가 속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기원이 내몽골의 서요하 지역이란 논문이 실렸다. 독일 막스플랑크 마르티네 로베츠 교수를 중심으로 10개국 학자들이 언어학 고고학 유전생물학을 통해 공동연구한 결과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 어족은 9000년 전 요하의 서쪽에서 기원해 신석기시대인 5500년 전 원시 한국어-일본어와 몽골어-퉁구스어로 분화했다. 이어 청동기시대에 원시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 퉁구스어 돌궐어로 나뉘었고. 최근 우리 말의 원시 표현문자가 요하문명 유적에서 발굴돼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요하 지역이 바로 고조선의 영향권과 겹친다.
동북공정을 일단락한 중국 학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요하문명이 황하문명에 앞서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 요하문명 흥륭와문화 유적에서 8000년 전 세계 최초의 재배종 기장과 조가 다수 발견됐다. 고조선의 특징인 비파형 옥검과 곰 토템 상징물도 출토됐다.
이를 두고 요하문명이 중화문명의 시발이냐, 동북아 공통문명의 시원이냐 연구와 논쟁이 뜨겁다. 중국 일부 학계는 ‘중화 Y자형 문화대’를 주장하고 있다. 동북 요하문명과 서북 초원지대, 남방의 장강문명이 모여 황하문명을 꽃피웠다는 거다.
중국 현지에서 연구하며 답사를 진행한 우실하 항공대 교수는 ‘동북아 A자형 문화대’를 제시한다. 요하문명을 꼭짓점으로 한 갈래는 황하~장강문명을 잇고 다른 한 갈래는 고조선~한반도~일본 열도로 이어진다는 거다.
고조선 관련 사료도 발견되고 있다. 18세기 청나라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 장밥티스트 레지 신부가 1735년 펴낸 책에 고조선이 기록된 거다. 황실 서고의 사료를 근거로 고조선이 요(堯)임금 때부터 존재하며 하(夏)의 폭정에 항거해 반란을 일으키고 영토에 침입했다고 기록했다. 이른바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기 훨씬 이전에 단군조선의 역사가 기록된 점에서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처럼 고조선은 신화를 넘어 역사의 중심으로 소환되고 있다.
동북아재단 ‘환빠 논쟁’ 뒤에 숨지 말아야
이런 가운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국정보고에서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고 거론해 논란이 뜨겁다. 강단사학은 허위 조작문서로, 일부 재야사학은 역사서로, 일부는 검증과 연구가 필요하나 사료적 가치가 있는 문헌으로 보며 논쟁 중이다.
아마도 이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진행되는 동북아의 고대사 연구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듯하다. 이 대통령이 역사를 보는 주체적 관점을 강조한 것은 뉴라이트계열 학자로 알려진 위원장을 의식한 것으로 비친다. 그런데 환단고기가 부각되면서 고대사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가 가려진 인상이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은 안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환빠 논쟁’ 뒤에 숨지 말라. 자주적 역사관을 토대로 K-한류의 근원인 고조선을 비롯해 고대사 연구에 적극 매진하라. 역사지도에서 독도를 지울 게 아니라 고대 이후 일본과 관계사를 둘러싼 학문적 대응도 중요하다. 그게 재단 설립 취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