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치단체에서 무너지는 ‘민간위탁사업 감시망’

2025-12-23 13:00:09 게재

구미시의회 ‘회계감사→ 세무 결산’ 후퇴, 경주시의회도

상위 조례 위반 가능성 커, 경상북도는 회계감사 시행

재원 상당부분 경상북도 예산, 도 재정도 관리부실 우려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업체에 업무를 위탁해 예산을 집행하는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감시망이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구미시의회가 민간위탁사업의 회계감사를 명시한 조례를 변경해 간이한 검사(세무 결산)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으며, 경주시의회도 간이한 검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의회가 민간위탁사업에 대해 간이한 검사(세무 결산)로 변경했다가 회계감사로 원상 복원하는 등 광역자치단체의 감사 강화 방향과는 정반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자체 민간위탁사업은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사업이기 때문에 제3자에 의한 외부감사를 보다 철저히 해서 세금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대상이다.

특히 광역자치단체인 경상북도는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를 도입·시행하고 있어서 경주시와 구미시의 이번 개정 조례는 상위 조례에 대한 위반 가능성도 있다.

2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11일 구미시의회는 본회의를 열고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안을 가결했다. 민간위탁사무 결산서에 대한 사업비 결산 감사를 회계법인(회계사)의 회계감사뿐만 아니라 세무법인(세무사)의 결산 검사로 대체 가능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같은 날 경주시의회도 민간위탁 기본 조례 개정안을 가결했다. 사업비 10억원 이상 민간위탁사무 결산서에 대해 회계법인(회계사) 또는 세무법인(세무사)로부터 사업비 결산서 검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상북도 회계감사 조례와 정면으로 충돌 = 하지만 두 기초자치단체의 조례 개정은 광역지자체인 경상북도 조례와 배치돼 지방자치법 위반 소지가 있다. 경상북도 사무위탁조례는 ‘회계감사’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무사에 의한 간이한 결산 검사는 경상북도 조례에 반해 위법이 될 수 있다.

특히 구미시와 경주시의 민간위탁사업은 경상북도의 위임을 받은 사무이거나 재원의 상당부분을 경상북도 예산이 투입된 경우여서 위법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기초자치단체의 조례가 광역자치단체의 조례를 위반하는지 여부에 대해 △사업주체 동일 여부 △조례 적용대상 동일 여부 △독자적인 예산의 사업인지 여부를 고려해 판단하도록 했다.

구미시와 경주시의 민간위탁사업은 이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경북도민 행복대학 경주시·구미시캠퍼스 운영의 경우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고, 경주시 아이돌봄서비스 사업의 경우 2가지 기준(사업주체 동일, 재원 상당부분 경상북도 예산)을 충족하고 있다. 구미시의 취업지원센터, 장애인일자리 지원,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은 경상북도 예산이 투입돼 있다. 경주시의 경우 아이누리 장난감도서관 운영, 다함께 돌봄센터 운영, 고혈압·당뇨병 등록 교육센터 등에 경상북도 예산이 들어가 있다. 제대로 된 회계감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시 재정’뿐만 아니라 ‘도 재정’ 집행에 대한 관리부실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광역자치단체인 경상북도가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상북도 내 다른 기초자치단체들이 잇따라 유사한 조례 개정에 나설 경우 회계 감시망이 전반적으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 민간위탁사업, 국고 보조금’ 감사 강화 방향에 역행 = 전국 지자체의 민간위탁 예산금액은 13조8800억원에 달한다. 회계감사가 아닌 세무 결산으로 대체할 경우 예산 집행에 대한 감시망이 뚫릴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는 민간위탁사업에 대한 회계감사를 2014년부터 도입했다. 현재 46개 지자체(광역 12곳, 기초 34곳)가 회계감사를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 외 지자체는 공무원이 자체 감사를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세무사의 결산 검사로 대체한 경우는 구미시와 경주시 2곳 뿐이다.

서울시의회도 세무사에 의한 간이한 검사로 변경하려고 했지만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시 회계감사로 조례를 바꿨다.

기획재정부는 2023년 6월 회계법인에 의한 보조사업 회계검증 대상을 보조금 3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확대했다. 행정안전부도 국고보조금 관리체계와의 정합성 확보를 위해 회계법인에 의한 지방보조사업(3억원 이상) 회계검증 제도를 2021년 1월 도입했다.

예산이 투입되는 민간위탁사업이나 보조금 사업에 대한 회계감사가 강화되는 추세인 상황에서 구미시의회와 경주시의회의 조례 개정은 엄격한 감독체계 구축과는 반대 방향이다.

외부감사법이 기업 회계와 관련해 회계사에 의한 외부감사를 의무화한 이유는 세무사와 회계사의 역할을 엄연히 다른 영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위탁사업에서도 자금이 집행되면 수입과 지출이 모두 기록되는 일종의 회계 장부가 작성되는 셈이다. 단순히 영수증이 있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구매한 물건의 원가가 적정한지, 매출 부풀리기는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원가회계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또 부정수급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지출된 항목 중에서 특이점을 찾아내 문제가 되는 건을 적발할 수 있는 회계감사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세무 결산 검사로는 부정행위를 밝혀내기 어려운 이유다.

◆조례 개정 과정도 절차적 논란 = 조례 개정과 관련해 구미시의회는 “외부로부터 사업비 결산 검사를 받는 경우 관련 대법원 판례에 따라 결산 검사 수행자를 회계법인, 공인회계사, 세무법인, 세무사까지 인정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주시의회도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세무사의 결산 검사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현행 지방자치법상 민간위탁 감독 방식에 관한 제한 규정이 없어 지방의회(서울시의회)의 재량권을 인정했을 뿐이다. 민간위탁사업에 대해 엄격한 회계검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거나, 지자체 결산 검사위원 업무 수준의 간이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세무사가 회계검증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를 이유로 민간위탁사업에 간이한 검사가 가능하다는 논리는 성립되기 어렵다.

조례 개정 과정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구미시의회의 경우 이달 2일 상임위(기획행정위원회) 공개 의사일정(예산안 심사)과 달리 해당 조례안을 기습 상정해 가결했다. 경주시의회는 상임위(행정복지위원회) 상정안건과 처리과정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개정안을 가결했다. 특히 경주시의회는 세무사인 의원이 본인의 직업적 이해와 관련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이해상충 논란까지 더해졌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깜깜이’ 처리가 지방자치법상 회의공개원칙과 주민의 알권리에 위배되는 절차적 하자에 해당하고, 의회민주주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이경기·최세호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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