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회생안에 ‘청산 수순’ 논란

2026-01-05 13:00:03 게재

노조·전단채 피해자 “현장·피해 외면” … 여권, 정부 개입한 구조조정 관리 촉구

홈플러스가 법원에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둘러싸고 노조와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전단채) 피해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노동계는 점포 폐점과 인력 감축을 전제로 하는 회생안이 현장 부담만 키운다고 비판했고, 전단채 피해자들은 피해 구제 없는 회생은 대주주와 금융기관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도 대응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번 회생계획안을 ‘회생을 가장한 청산 시나리오’로 규정하며, 대주주 MBK파트너스의 책임 강화와 함께 정부가 구조조정의 관리자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회생계획안 아닌 사실상 청산안” = 을지로위원회는 최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K가 법원에 제출한 회생계획안은 홈플러스를 정상화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자산 매각과 점포 폐점을 통해 회사를 단계적으로 해체하는 청산 계획에 가깝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이 사태를 시장에만 맡길 경우 대형 유통기업이 통제 없이 붕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는 회생계획안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매각하고, 전국 120여개 대형마트 가운데 최대 41개 점포를 폐점해 약 3000억원 규모의 회생금융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을지로위원회는 이 같은 방안이 단기 현금 확보에 치우친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익스프레스 매각과 대형마트 축소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유통망 규모와 시장 지위가 약화돼, 회생 이후 영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수자를 찾지 못할 경우 회생이 사실상 청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주장이다.

특히 회생계획안에 대주주의 직접 출자나 손실 분담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을지로위원회는 “회생의 비용은 노동자와 협력업체·지역사회가 떠안고 대주주는 자산 매각으로 출구를 찾는 구조”라며 “이런 방식의 회생은 공공의 관리 없이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기업형 슈퍼마켓(SSM) 매각을 중심으로 한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 모습.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대주주 책임 빠진 구조조정” = 정치권의 문제 제기는 구조조정의 책임과 이를 관리할 주체로 이어진다. 민병덕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과거 기업 위기 때 오너들은 사재를 출연하며 책임을 감내해 왔다”며 “MBK 역시 투자자로서 책임을 지는 ‘책임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자와 가족을 포함해 약 30만명의 생계가 걸린 사안”이라며 “정부가 중심이 되는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회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알짜 사업과 점포를 먼저 매각한 뒤 본체를 재매각하겠다는 구상이 회생보다는 청산가치 극대화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이 채권단과 대주주 중심으로 흘러가고, 사회적 비용이 통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는 회생계획안이 실행될 경우 점포 폐점과 희망퇴직이 동시에 진행돼 노동자와 협력업체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안수용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장은 “익스프레스 매각과 점포 폐점은 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영업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조치”라며 “구조조정의 부담이 현장 노동자와 입점업체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회생이 아니라 해체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단채 피해자들도 정부의 책임 있는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홈플러스 물품구매전자단기사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전자단기사채 피해 구제 없는 회생·매각은 MBK와 금융기관의 출구 전략에 불과하다”며 “이번 회생은 피해자와 노동자, 입점업체, 지역사회를 살리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단순한 시장 실패가 아닌 기만적 금융거래로 규정했다. 차입매수(LBO) 이후 자산 매각과 재임대 구조가 반복되며 재무 부담이 커졌고, 신용등급 하락과 회생 가능성이 제기된 시점에도 전자단기사채가 ‘안전한 상품’으로 판매됐다는 주장이다.

피해자 단체는 회생계획안에 전단채 피해자 항목을 별도로 신설해 피해 규모와 회수율, 추가 보상 방안을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의 일부를 피해자·노동자·입점업체 보호를 위한 별도 계정으로 적립해야 한다며 “공적 개입의 전제는 MBK의 책임 있는 손실 분담과 사재 출연”이라고 강조했다.

◆공적 개입 요구 본격화 = 정치권과 노동계, 피해자 단체의 공통된 요구는 정부의 역할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공적 개입은 단순한 지원이나 구제금융이 아니라, 구조조정 전반을 관리하는 조건부 개입이다. 회생 절차를 시장에만 맡길 경우 자산 매각 중심의 청산이 가속화되고, 그 피해가 고용과 지역 경제,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치권에서는 연합자산관리회사(유암코)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적 구조조정 기구가 회생 절차에 직접 참여해 자산 매각과 채무 조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공적 자금이나 정책금융이 투입될 경우, 대주주의 출자와 손실 분담을 명확한 전제 조건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또 다른 특혜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 회생에 대한 논의가 노사와 정치권, 피해자 문제를 넘어 정부의 역할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라며 “회생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조정이 청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어떤 기준과 조건으로 개입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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