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허위조작정보근절법에 대한 미국 재래식 언론의 경고

2026-01-06 13:00:04 게재

미국의 한 ‘재래식 언론’이 사설을 통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한 한국의 허위조작정보근절법안이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하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오는 7월 시행될 예정이다. 여기서 재래식 언론이란 전통 언론을 불신하는 이재명 집권세력이 입법 과정에서 갑자기 쓰기 시작한 용어를 차용한 표현이다.

집권세력이 미국 언론까지 재래식이라 부르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전통 언론이 재래식이라면 해당 사설을 쓴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 레거시 미디어 또한 재래식 언론이다. 한국과 미국의 전통 언론은 뉴스가치 평가에서 기사생산과 유통방식까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저널리즘 원칙을 기본적으로 중시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종이신문을 유지하되 줄여서 발행하면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해 서비스한다는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집권세력의 불신을 받아 수난을 겪는 모양새 또한 비슷하다. 미국은 언론자유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제도적으로 폭넓게 보장돼 있지만 현실에서 정권을 비판하는 보도는 최고통치자로부터 종종 가짜뉴스로 낙인찍힌다. 보도에 작은 허점이라도 있으면 어마어마한 허위 또는 조작으로 몰려 가차 없이 소송을 당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중 뉴욕타임스가 자신에 대해 “거짓되고 악의적인 명예훼손 보도를 이어왔다”며 150억달러(약 20조원) 손배소를 제기했다. 영국 BBC를 상대로는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에 100억달러(14조원) 청구 소송을 제기해 두 사건 모두 현재 진행 중이다. 그는 CBS방송, ABC뉴스에도 각각 100억달러 소송을 낸 뒤 합의금조로 한곳 당 한화 200억원 이상씩 받아냈다.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 다른 언론에도 유사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지만 아랑곳 않고 틈만 나면 언론을 공격한다.

이 때문에 자국 정치 환경이 이렇게 험한데도 남의 나라 언론자유를 걱정해주는 미국 언론이 자못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이 문제가 한 나라의 민주주의 척도를 가름하는 중요 의제라는 얘기 아닐까.

언론자유는 최소한의 허위보도 감내 전제

사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란 애당초 민주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허위 또는 조작정보는 근절할 수도, 근절될 수도 없다. 자유로운 언론은 최소한의 허위보도를 감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 점의 허위조작정보도 없는 언론은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허상으로 가능할 뿐 자유민주진영에선 존재할 수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령한 계엄포고령에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는 문구가 들어있던 사실이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란 이름의 법은 물론 없다. 국회는 나쁜 정보의 유통 근절을 명분으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일부 조항을 개정했고, 이를 입법 목적에 맞춰 ‘근절법’이라 부를 뿐이다. 규제 대상이 정보통신망이어서 전통 언론 외에 대형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포함한다.

이들이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물린다는 게 법의 주요 내용이다. 또 유통되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누구든 신고할 수 있고, 신고 받은 플랫폼 기업은 자율규제 정책에 따라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그러니까 여전히 관건은 무엇이 허위조작정보이고, 그 판정은 누가 할 것인지 하는 본질적 사안으로 돌아온다.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불편한 보도가 나오면 십중팔구 “사실무근 가짜뉴스에 대해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부인한다고 진실이 허위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허위로 보이지만 훗날 사실로 드러난 사례도 적지 않다.

문제의 정보를 고의로 유통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허위인줄 알면서도 보도하는 언론이 얼마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예로 든 미국 폭스뉴스 사건은 지극히 예외적일 뿐이다. 폭스뉴스는 투표기 조작이 말이 안되는 허위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해당 보도를 이어간 사실이 드러나 투표기 업체인 도미니언에 7억8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의 합의금을 주고 사건을 종결했다. 미국에서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라 부르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허위조작정보 유통의 고의성 입증은 불가능에 가깝다.

‘위축효과’ 지속되면 민주주의 질식

현대 디지털 사회에서 허위조작정보의 폐해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징벌적 손배제를 시행하면 권력자들은 으름장 소송을 남발할 것이고, 언론은 실수를 두려워하면서 보도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지속되면 진실은 어둠속으로 숨어들어가고 민주주의는 억눌리게 된다.

미국의 재래식 언론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신뢰를 잃고 정치적 회의주의만 불러일으킨다”고 한 것은 미국과 한국에 공히 적용되는 경고다.

이종탁 신한대 특임교수 언론인